사업가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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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사업가와 대통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0. 5.

그는 성공한 사업가다. 부동산 개발이 전공 분야다. 온 국민이 그의 성공 스토리를 부러워했다. 그는 TV가 만든 스타다. 성공 스토리가 TV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호감도는 크게 올라갔다. 그는 정치권 진출을 꾸준히 추진했지만 기성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보수정당의 막강한 인물들을 꺾고 대선후보가 됐다. 그는 여론의 힘으로 당원들의 벽을 넘었다. 정통 보수정당의 정치인과 당원 중에는 끝내 그를 대선후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도덕적 흠결이 많았다.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전 국민의 관심사이자 미스터리였다. 당연히 탈세 의혹 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불법은 없었다며 그를 옹호했다. 그는 고상하게 말하지 않았다. 직설적이고 그래서 실언도 잦았다. 저급한 여성 비하발언이 논란이 됐고, 희박한 역사의식도 말이 많았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언론도 많았다. 언론은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고, 그는 그런 언론을 편향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일자리라는 화두가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친기업 정책을 내세웠다. 법인세를 낮추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세금 인하 등 친기업 인센티브로 해외로 나가는 기업을 국내에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고소득자 세금도 깎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가 늘면 그 부가 아래로 흘러넘치면서 국가경제도 발전하고 국민복지도 좋아진다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정책기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가 누구인지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TV 리얼리티쇼로 유명해진 부동산 개발업자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미스 유니버스를 ‘미스 돼지’라고 부르고, 몸이 불편한 기자를 흉내내며 비하하고, 여성인 상대 후보의 스태미나를 끊임없이 문제 삼는다. 억만장자이면서 18년간 소득세를 한번도 안 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그를 세법의 허점을 활용한 ‘천재’라고 옹호한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해외에 빼앗긴 일자리를 찾아오겠다며 호언장담하고 있고 다수의 유권자들은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미국의 다수그룹인 대졸 미만 백인 남성들은 10명 중 6명이 그를 지지한다.

 

그런데 그에 관한 설명을 보면서 떠오르는 다른 사람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이다. TV 드라마 주인공, 새누리당 비주류, 각종 실언과 재산 관련 의혹. 위에서 말한 트럼프의 특징은 MB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다른 점도 많지만 사업가 출신에서 오는 기질과 스타일, 정책기조 등의 공통분모를 말하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말하는 것도 유사하다. 미국 대선을 보면서 MB를 자주 떠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MB는 기성 정치인들을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애들처럼 한가하다고 비판했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가끔 접시를 깰 수도 있다며 각종 도덕성 의혹을 버텨냈다. 그는 대신 성공한 비즈니스맨 신화를 배경으로 유권자들을 향해 자신만이 더 잘살게 해줄 수 있다고 외쳤다.

 

현재 미국 대선은 아슬아슬 접전이라 둘의 유사성이 대통령 당선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선택이야 미국 유권자들의 몫이지만 먼저 사업가 출신 대통령을 겪어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선례를 참고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MB는 기업가 출신인 만큼 권력의 공공성에 유난히 취약했다. 권력을 마치 축재하듯이 벌어들인 사유재산으로 여긴 것 같다”는 한 측근의 사후 반성문이 참고가 되길 바란다. 나랏돈과 개인 돈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반대세력을 포용하는 민주적 절차는 사라질 수 있다. MB는 2위와 2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쉽게 당선됐음에도 임기말 지지율은 30%도 안되게 추락했다는 점도 미국 유권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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