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의 외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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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샌더스의 외교 ‘철학’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2. 16.

1983년 3월 컬럼비아대 졸업을 앞둔 한 국제정치학도는 학내 잡지 기고에서 “대부분 학생들은 전쟁에 대한 직접적 지식이 없다”며 “군대의 폭력은 언제나 TV, 영화, 인쇄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내의 반핵 논의가 ‘최초공격’ ‘반격’ 같은 협소한 기술적 논의에 머물러 있다고 질타했다. 이는 “질병 자체보다 증상에 더 치중하는 것”이라며 핵문제는 결국 “미국의 경제와 정치, 나아가 군사주의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이 학생은 버락 오바마이다. 젊은 오바마는 문제의 본질이 미국의 군사주의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취임 첫 해 ‘핵 없는 세계’ 선언에는 그런 연원이 있다. 20대 때 꿈에 비해 중년의 오바마가 재임기간 이뤄낸 성취는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철학이라도 있었기에 군산복합체의 온갖 훼방을 뚫고 이란 핵합의를 타결할 수 있었다. 군사주의에 비판적이었던 그의 견해는 해외분쟁 개입을 최소화하는 ‘오바마 독트린’으로 남았다. 하지만 또 다른 과제인 북한의 핵개발이 오바마 임기 중 가장 많이 진행됐다는 사실은 오점이다.

이제 시선은 차기 대통령에게 쏠린다. 오바마 독트린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의외로 버니 샌더스이다. 오바마의 불개입 노선에 좌절감을 느끼는 공화당 안보전략가들 상당수는 설사 공화당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힐러리 클린턴이라면 좀 더 군사주의적 미국으로 회귀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샌더스는 ‘레짐체인지’를 추구하는 외교정책에 반대하고 군사개입은 최후수단으로 남겨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샌더스는 외교독트린이랄 수 있는 지난해 11월 조지타운대 연설에서 “해외에서 무모한 모험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국내적 역량을 재건하기 위해 선거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당면 과제인 이슬람국가(IS) 대응에 있어 그는 미국이 주도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국가들에 더 많은 역할을 하게 할 생각이다. 이 과정에 러시아, 이란과도 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연설을 하고 있다._AP연합뉴스

힐러리는 최근 토론에서 샌더스가 외교에 문외한이고 누구 조언을 듣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경멸했다. 샌더스는 힐러리가 존경하는 헨리 키신저의 조언을 듣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키신저 디스’의 방점은 힐러리와 달리 샌더스가 워싱턴 주류와의 연결 끈이 없다는 점을 부각한 데 있다. 그는 대선주자라면 필수코스라 할 수 있는 워싱턴 안보전략가들 면담을 하지 않고 있다. 주류언론은 그에게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십자포화를 퍼붓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샌더스의 ‘비주류’ 차별화 전략은 먹혀들고 있다.

샌더스는 걸프전이 한창이던 1990년 의회에 입성한 뒤 25년간 외교 관련 표결에 많이 참여했다. 그런 점에서 후보 시절 조지 W 부시나 오바마에 비해 경험이 적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시선은 키신저 같은 이들의 결정으로 캄보디아,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등에서 숨진 무고한 민간인들과 미국 젊은이들에게 있다. 더 이상 20세기의 미국처럼 행동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샌더스는 대북제재법안 관련 성명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힐 기회가 있었다. 북한이 10년간 핵능력을 키워왔고 위성발사가 탄도미사일 기술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요 기술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제재에 찬성했다. 하지만 선제타격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 등과 함께 외교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 한반도 분쟁 해결을 최우선 순위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이라는 점에서 나는 힐러리보다 샌더스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후보시절 외교에 전문성이 있다고 자랑했던 한 대통령이 지금 어떤 재앙을 만들고 있는지 보는 입장에서 더 그렇다.


손제민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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