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명분과 실리 챙긴 대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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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세상읽기]명분과 실리 챙긴 대북 지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9. 26.

9월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 완전 파괴’를 경고했다. 이에 질세라 다음 날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성명’을 통해 미국에 대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으로 맞받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폭탄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다니면서 다시 ‘10월 위기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말했듯이 ‘태평양상 수소탄 시험’일 수 있고, 대기권 재진입에 성공한 탄두를 장착하고 미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ICBM 발사일 수도 있다. 또는 괌 주변 공해상으로 IRBM을 실제로 쏠 수도 있다. 북한이 이 같은 군사적 도발을 하게 되면 일단 미국도 체면 때문에 군사적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전략폭격기가 뜨고 한반도 해역으로 항공모함이 올라올 것이다. 이쯤 되면 북·미 사이에 낀 우리 국민들은 전쟁공포 속에서 불안에 떨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엔본부 _ AFP연합뉴스

 

시도 때도 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만 벌써 10개나 된다. 북한의 핵정책 변화를 유도하려는 것이 대북 제재인데, 북한은 핵정책 변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제재결의안이란 처방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풀어보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되고, 북한의 대응도 중증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강한 처방을 내놓아도 의도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처방을 내놓은 쪽에서조차 일종의 제재 피로증후군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압박과 제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밤이 깊어 가면 그만큼 새벽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 완전 파괴’를 언급하자 워싱턴 포스트가 트럼프를 비판하고 나섰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를 풍자한 만평도 쏟아지고 있다. 김정은의 도발 못지않게 북한을 자극해서 한반도 안보상황을 악화시키는 트럼프, 한반도 내 군사적 위기를 가중시키는 이 둘의 어이없는 맞대응을 언론들은 꼬집고 있다. 언론이 이런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향후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은 국내적으로 제동이 걸릴 것이고, 국제적으로도 호응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일으키는 북한보다 해결책임이 있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대화와 협상 쪽으로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있다. 메르켈 총리가 북핵 중재 용의를 재차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위기관리 차원에서 미국이 먼저 대화·협상 쪽으로 핸들을 틀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중요하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제재 4번, 압박 1번, 평화는 32번 언급했다. ‘평화’를 32번이나 언급한 것은 한반도 안보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점에서 트럼프와는 대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1일 통일부가 유니세프와 WFP의 북한 영·유아 및 모자건강 사업에 8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정부 내 일부 부처의 우려와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 총리의 지원 연기 요청도 거부하면서 대북 지원을 결정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사명으로 하는 통일부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남북관계 복원의 마중물을 부었다는 점에서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지난 6월 ‘무주 세계태권도대회’에 참가했던 북한의 장웅 IOC위원은 “스포츠 위에 정치 있다”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공동 개최를 거부했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스포츠와 정치는 무관하다”고 석달 만에 말을 바꿨다. 북한이 남북 스포츠회담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비치는 발언이다. 북·미 간 우발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 복원의 기미가 감지된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기회일 수 있다.

 

혼란스러운 정세일수록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방향성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남북관계 복원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고, 평창올림픽도 남북관계 복원의 기회라면 기회가 될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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