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닮은 꼴 참사, 터키 소마 탄광 폭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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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닮은 꼴 참사, 터키 소마 탄광 폭발사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5. 19.
얼마 전 터키에서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탄광에서 폭발사고가 벌어져 300여명이 숨졌습니다. 어떤 사고였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정리해봅니다.

터키 참사는 언제 어떻게 일어났나요


터키 이스탄불에서 남쪽으로 250㎞ 떨어진 마니사주 소마 탄광에서 지난 13일 전기공급장치 폭발로 갱도가 무너졌습니다. 19일 현재 공식 사망자 수는 301명. 더 매몰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부가 수색을 종료했습니다. 1992년 흑해 연안의 종굴닥 탄광 사고 사망자 263명을 뛰어넘는 터키 사상 최악의 탄광 사고로 기록됐습니다.

 

집권당 '안전법안' 거부 2주만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남쪽으로 250㎞ 떨어진 마니사주 소마 탄광에서 13일 오후 배전장치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재와 갱도 붕괴로 숨진 광부의 시신을 구조팀이 실어나르고 있다. 소마_EPA연합뉴스


사망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다는데.


사고 첫날, 시신이 되어 나온 사람들 중 한 명은 15살 ‘소년 광부’ 케말 이을디즈였습니다. 소년의 삼촌은 도안 통신에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며 침통해했습니다. 정부는 “15살짜리 광부는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지만, 사망자 대부분이 하청업체 계약자들인 것으로 미뤄 광산 측이 신원도 확인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까지 고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번 사고는 터키 정부의 탄광 민영화와 규제 완화, 비용을 줄이겠다며 업체가 무분별하게 추진한 하청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터키에서는 탄광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고 하던데요.


터키에서는 1941년 이후 탄광 사고로 3000명 이상이 숨지고 10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탄광노조는 오래전부터 정부가 탄광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회사가 노동자의 안전을 희생시키며 이윤을 챙긴다고 비판해왔습니다. 


소마 탄광 소유주인 알리 구르칸은 2012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들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돈도 적게 받는 하청업체 계약자들을 고용한 덕분에 t당 130달러에 달했던 채굴 비용을 24달러까지 낮췄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습니다.

 

단순 사고가 아닌 ‘산업 학살’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는


특히 하청업체 인력은 안전 훈련도 받지 않은 채 투입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당국의 관리감독은 없었습니다. 9개월 전 타네르 이을드즈 에너지 장관이 소마 탄광을 방문했지만 업체의 높은 생산성만 칭찬했을 뿐이었다고 터키 일간 후리예트는 전했습니다. 


소마 탄광 노조와 노동사회안전부도 이 탄광이 지난 2년간 5차례 안전점검을 받았으며, 지난 3월 안전점검에서도 지적 사항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구출된 광부들은 “탄광에 안전장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학살’, “사상 최악의 산업 살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사고 직전에도 탄광 관리감독이 매우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후리예트는 야당 의원 60명이 지난달 29일 소마 일대의 탄광을 조사하자는 결의안을 냈으나 소마 지역구의 의원을 비롯한 집권 정의개발당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14일 보도했습니다. 


야당은 소마에서 지난해 5000건의 탄광 안전사고가 발생했으며, 미성년자를 고용하고 무리하게 초과근무를 시키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의개발당 소속인 마니사주 부지사 무자페르 유르타스는 의회 조사결의안을 무산시키기 위해 “소마 탄광은 터키 내에서 가장 안전하다” “직업 특성상 치명적인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궁지에 몰렸겠군요.

 

이번 사고가 다음 달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 출마를 노리는 에르도안 총리는 알바니아 방문을 취소하고 사고현장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격앙된 광부 가족들의 항의만 빗발쳤습니다.


터키의 '팽목항' 소마, 시위대에 최루탄


에르도안의 잇단 발언들은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에르도안은 “영국 역사를 보니 1838년에는 탄광사고로 204명이 숨졌고 1866년에는 361명이 사망했더라”면서 100년도 더 지난 영국의 탄광사고를 예로 들며 이번 사건을 설명, 빈축을 샀습니다. 또 탄광 사고의 책임을 묻는 유족을 때렸다는 논란까지 벌어졌습니다. “원래 탄광에서는 ‘업무상 재해’가 종종 일어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했다는 소식도 있던데요.


이스탄불에서는 탄광 사고를 방기한 정부와 광산회사 소마홀딩스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수도 앙카라와 소마에서도 행진과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국민들의 슬픔을 달래기는커녕, 반정부 시위를 억누르는 데에만 급급하는 인상입니다. 소마 시는 집회를 금지했고, 애도를 표하기 위해 지난 17일 도시를 찾은 수십 명을 억류했습니다. 


에르도안과 호세프, 시위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에르도안은 반민주적 여론통제와 부패 스캔들로 지난해부터 국민들의 반발을 사왔지요. 작년에 이스탄불의 유서 깊은 탁심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유혈진압을 했고, 올들어서 에르도안의 부패 스캔들이 잇따라 터졌을 때에도 인터넷 통제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든 유권자들과 농촌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믿고 국민 여론을 계속 무시하고 있는 것 같네요.

 

말레이시아 여객기 실종, 한국 여객선 침몰, 나이지리아 여학생 집단납치, 터키 탄광사고... 요새 지구촌에 대규모 재난이 잦은 듯합니다.


최근 두 달 새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참사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건이지만 신기하리 만치 닮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충격과 슬픔마저 분노로 바꾸어 버리는 ‘정부의 무능' 말입니다.


말레이시아와 터키, 나이지리아, 그리고 한국


이 재난들은 정부의 부실감독·규제완화→초기대응 실패→정부 지도자의 망언→반정부 여론 억제라는 공통된 패턴으로 진행됐습니다. 세월호 탑승객 숫자를 놓고 당국이 우왕좌왕해서 우리 국민들도 많이 분노했는데, 나이지리아에서는 똑같이 정부가 납치된 학생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양산해서 비난을 샀습니다.

 

다들 경제적으로 승승장구 하던 나라들이 아닌가요.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함께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아시아의 모범국가로 손꼽혔습니다. 나이지리아와 터키는 멕시코·인도네시아와 함께 브릭스를 이을 ‘민트(MINT)’ 신흥국으로 꼽혀왔고요. 나이지리아는 2000년 이후 연평균 8%대의 높은 성장률을 거듭해왔고, 지난해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치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최대 경제국으로 떠올랐습니다. 


터키 역시 에르도안이 집권한 2002년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45%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통해 이런 경제적 성과가 안전과 신뢰를 희생시키면서 이뤄낸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입니다. 터키가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이번 탄광 사고의 배경이 됐다는 게 단적인 예입니다. 


블룸버그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지난달 세월호를 소재로 한 칼럼에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GDP 성장률에 집착할 경우 이런 문제들이 나타난다”며 “위기 시에 정부가 삼류라면 경제가 일류인 것은 필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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