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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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더글러스 러미스 칼럼

슈퍼하이웨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22.

아돌프 히틀러가 남긴 구절에 이런 게 있다. “모든 전략적인 도로는 전제군주에 의해 지어졌다. 로마, 프로이센, 프랑스가 그랬다. 그 도로들은 나라를 직선으로 가로지른다. 다른 모든 길들은 꼬불꼬불하고 사람들의 시간만 낭비한다.”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슈퍼하이웨이가 두 명의 강력한 전제군주에 의해 지어진 것이 맞다.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autostrada)는 무솔리니가 집권한 지 2년 뒤인 1924년 지어졌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최초의 ‘진정한’ 슈퍼하이웨이는 나치 하에서 지어진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이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형태의 토목 공사 뒤에 자리하는 정신은 전체주의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후 고속도로 건설 붐은,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있건 없건,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고속도로 건설의 폭발은 공정한 자유시장이 작동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전설적 사례로 남아있는 1938년 로스앤젤레스의 세계 최장의 전차 시스템 매각이 대표적이다. 제너럴모터스는 스탠더드오일, 파이어스톤타이어와 합작해 이를 사들여 울타리를 치고 선로를 걷어냈다. 이로써 LA는 세계 제1의 자동차 대도시로 변모했고, 이른바 ‘자동차 문화’가 탄생했다. 주차장이 마련된 식당·영화관, 자동차 개조, 차량 세 대를 수용하는 주택 차고, 교통체증, 17중 추돌 사고, 스모그 등이 모두 LA에서 탄생했다. 이 모두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좋은 것인 양 퍼졌다. 오늘날 LA 땅의 3분의 2가 자동차 운행과 주차에 할애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내친김에 미 전역의 전차 선로를 사들이고 자동차 길을 위해 울타리를 쳤다.

자동차회사가 전차 선로와 철로를 없애기는 했지만, 이를 대신할 고속도로까지 지은 것은 아니다. 철도회사의 경우처럼, 자동차회사가 고속도로를 짓고 관리하기까지 했다면, 자동차 값이 얼마나 비싸졌겠는가. 몇몇 유료 도로를 제외하면 정부가 납세자 돈으로 지은 것이다.

또 다른 놀라운 사례는 1956년 의회가 고속도로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전국적인 주(州)간 고속도로 체계 구축을 승인한 것이다. 이 사업 예산은 당초 250억달러였으나 나중에 두 배로 불어났다. 사상 최대의 공공사업이라고들 했다.

그 결과 대부분 일직선에 경사가 거의 없고, 속도방지턱·신호등·횡단보도 같은 장애물도 없고, 24시간 내내 자동차와 콘크리트, 엄청난 굉음뿐인 6만5000㎞ 길이의 활주로 같은 길이 탄생했다. 환경에 미친 영향은 재앙이었다. 엄청난 면적의 광야가 불도저로 파헤쳐졌다.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는 동물들의 이동경로가 막혔고, 그런 게 없는 곳은 거대한 도살장으로 변모했다. 한때 길이라고 불렀던 것과 어떤 유사성도 찾기 어려웠고 그것을 따라 이동하는 것도 한때 여행이라고 불렀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독일 서부 에센 인근 고속도로(아우토반 A40)가 18일 질주하는 차량 대신 소풍객과 도보자, 자전거타는 사람 등으로 가득차 있다. 독일 루르 지방이 2010년 유럽연합(EU)의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하나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300만명이 참가해 폐쇄된 60㎞ 도로 위에서 ‘느림의 삶’을 즐겼다. (출처 : 경향DB)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 거대 자동차회사들은 생산품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팔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그 회사들은 각 지역에 자동차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이미 일부 나라에서는 그 과정이 상당히 진행됐다. 이 회사들은 고속도로 건설을 더 필요로 한다.

물론 그들이 도로를 짓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해당 지역의 납세자들이 돈을 댈 것이고, 일부는 유상원조 자금, 즉 빚으로 충당될 것이다.

적도를 따라 48차선 도로로 지구를 두르고 전 세계 3억5000만대 차량을 집어넣는다고 치자. 그러면 차가 꽉 막혀 전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차들이 움직이려면 이보다 네 배의 192차선 도로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새 차가 쏟아져나오는 속도에 맞춰 193차선을 짓는다면, 아찔한 속도로 도로를 지어야 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4차선을 기다리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설 것이다. 독자들 중엔 그런 상상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밤에 악몽을 별로 꾸지 않는다면 해보길 권한다.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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