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월에서 올랜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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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스톤월에서 올랜도까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6. 15.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의 펄스 클럽 총격 사건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총격범이 겨냥한 곳은 단순한 나이트클럽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며 시민적 권리를 주장하는 연대와 주체화의 장소였다.” 어둠 속에서 밤새 마시고 떠들고 춤추는 나이트클럽은 어떻게 “연대와 주체화의 장소”가 될 수 있었을까?

주간지 ‘더네이션’ 편집국장 리처드 김은 “부디 음악을 멈추지 말아주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게이바는 치료를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이고, 종교를 잃어버리거나 종교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는 성소이며, 가족 없는 사람들에게는 집이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프가니스탄계 이민자 집안의 한 젊은이가 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성소수자(LGBT)에 대한 증오범죄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압도적으로 많이 벌어져왔다.

연방수사국(FBI)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5479건의 증오범죄 중 성소수자들을 겨냥한 것이 20%에 달한다. 이번처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사살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증오범죄의 대부분은 백인 우파나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의 소행이다. 일부 남부 주들은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단을 내린 뒤에도 성소수자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이성애자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이들의 권리를 억압한다. 주 정부의 권한으로 동성부부에게 결혼허가증을 내주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서까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제약하기도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성소수자 혐오, 여성 혐오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사건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적, 인종, 종교를 초월하는 가부장주의, 이성애자 중심의 권력 구조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제한적 총기 소유 권리가 보장된 미국이기 때문에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을 뿐이다.


가족·친구 잃은 올랜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게이 클럽 총기난사로 숨진 아만다 알베어(25)와 메르세데즈 플로레스(26)의 친구들이 13일(현지시간) 올랜도 시내에 마련된 임시 추모시설에서 두 사람을 기리며 손을 맞잡고 있다._AP연합뉴스


1969년 6월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스톤월 인이라는 바는 게이, 레즈비언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이 바는 마피아가 운영하는 곳으로 주류판매 허가나 화재 비상 탈출구, 청결한 상수시설 등이 없는 열악한 곳이었지만 가장 가난하고 주변화된 성소수자들을 유일하게 받아주는 공간이었다. 이들에게 스톤월은 곧 치료이고 성소이며 집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툭하면 스톤월을 단속하고 뇌물을 요구했다. 그날도 새벽 1시가 넘어 경찰이 급습했고, 안에 있던 200여명의 성소수자들은 체포될 상황에 처했다. 경찰이 이들의 몸을 수색하고 호송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충돌이 벌어졌다. 이후 뉴욕을 시작으로 동성애자 단체가 만들어져 세계로 퍼졌다. 매년 6월을 ‘LGBT 긍지의 달’로 기념하게 만든 스톤월 항쟁이다.

올랜도 총격 사건 이후 워싱턴, 뉴욕 등 미국 각지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홍대 앞에서도 올랜도 출신 한 성소수자의 제안으로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47년 전과 달리 경찰은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 시장은 12일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을 축복하기 위한 오늘의 모임이 증오에 의해 좌절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경찰력을 추가로 동원해 성소수자 집회를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노예제 폐지 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될 때까지 100년 이상 더 걸렸듯이, 성소수자 권리도 갈 길이 먼 것만은 분명하다. 여전히 치료, 성소, 집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장소가 게이 클럽이기 때문에 한국인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일부 국내 언론 보도 뒤에 깔린 편견이나 아이돌그룹 가수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악성 댓글 때문에 자진 삭제한 해프닝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치료, 성소, 집과 같은 곳이라도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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