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일본의 역사왜곡이 ‘위안부 합의’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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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일본의 역사왜곡이 ‘위안부 합의’의 본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3. 21.

!지난 18일,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되었다. 2017년부터 주로 고교 1학년생들이 사용하는 사회과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한다. 상당수 교과서에서 “연행”이 “모집”으로, “끌려갔다”가 “보내졌다”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군”이 관여했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항의” 혹은 “규탄”이라는 표현 대신,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분하게 여기어 스스로 한탄한다는 “개탄”이라는 단어로 독도문제에 응대했을 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곡된 역사관”이라는 표현 속에 위안부 문제도 들어있다고 변명하거나, “4년 전 검정에 비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분량이 늘었고 고노 담화 내용이 상세하게 쓰여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도 있다”는 주객이 전도된 평가까지 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2월28일 한·일합의 내용을 볼 때 사실상 예견된 측면이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책임”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회피한 채,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 자체를 미리 봉쇄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한 국가에서 남의 나라 검정제도를 탓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도 언론의 보도 태도는 문제가 있다. 상당수의 한국 언론들은 이번 교과서 검정결과가 “한·일합의 위배”라고 진단하고 “합의정신에 맞게” 위안부 내용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위안부 합의의 바탕에 깔린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자세를 일관되게 가질 것을 거듭 요청”하는 황당한 자세마저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번 교과서 검정결과가 역설적으로 한·일합의 “내용”과 “정신”을 명확히 드러냈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당사자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양국 간 정치적 합의에 불과했다는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개선의 걸림돌로 규정함으로써 “발전적 미래”를 위한 “걸림돌”을 치울 책무도 한국정부 스스로가 떠안았다는 사실, 쌍방 간 외교적 성과라 내세우는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란 과거사와 연관된 모든 책임으로부터 일본을 자유롭게 해준 대신, 저항하는 한국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식적 식민지 종식 이후에도 지속되는 식민성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직시하게 되었고, 식민청산의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상실한 ‘자기모순적’이며 ‘굴종적인’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의 현주소도 확인했다.

한국정부와 언론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 지속될수록 이를 대면하고자 하는 도덕적 행위자들 또한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한·일합의 이후, 한국의 당사자들과 시민사회는 지금까지 여러 경로와 방법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합의 자체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출발선상에서 차분히 재검토하시기 바란다.

물러날 곳이 없다고 핑계 댈 필요가 없다. 외교적 결례라 말하지 말라. 물러날 곳은 이미 일본정부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충분히 마련해 주었다. 자기기만과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마저 오만과 무지로 걷어찬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도발에 스스로 탄식만 할 수밖에 없는 종속적 위치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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