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트럼프 법인세의 허상을 좇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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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시론]트럼프 법인세의 허상을 좇다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2.

미국의 세제개편안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하원에서 최종 의결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만에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35%에서 21%로 낮추어지게 됐다.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에 달할 감세효과는 전체 60% 이상이 소득상위 1%에 귀속된다고 한다. 고소득 그리고 초고소득 계층만을 위한 감세이며 중산층과 저소득계층은 앞으로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미국에서 세금문제는 독립시기 보스턴 티파티 이후에도 늘 정치의 최전선에 머물렀다. 닉슨 시기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복지국가의 축소를 선거승리를 위한 정책의 대안으로 삼은 사람이 레이건이다. 레이건은 스스로를 중산층 납세자들의 옹호자로 포장했다. 유권자들에게 줄어드는 것이 부유한 이들의 세금이 아니라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세금이라고 홍보했고 이 명백한 거짓은 그러나 국가를 개인에 대한 부당한 간섭의 산물로 여기는 미국적인 시각을 매개로 유권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수용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번 세제개편안을 “역사상 최대 감세안”이라고 자평했지만 야당에선 “부자감세”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_ AFP연합뉴스

 

감세는 그러나 부산물이 있게 마련이다. 레이건 시기에 미국의 국가부채는 두 배가 되었다. 레이건 감세정책의 가장 슬픈 흔적은 무엇보다 공립학교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았던 캘리포니아의 공립학교들은 레이건이 주지사로 재직하며 ‘주민 발의(Proposition) 13’을 통과시키면서 감행한 감세안 이후 교육투자 감소로 가장 낮은 수준의 학교들로 전락했다. 미국의 도로와 교량 등 공공인프라의 수준은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되었고 저소득층을 위한 보건의료체계는 선진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경제의 어려움은 동부에 거주하는 전통적인 중산계층들에게도 전달되었다. 부동산시장에서 그들의 소득으로 지불할 수 있는 주거공간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므누신 재무장관은 트럼프 감세법안이 기업과 가계의 소득을 늘려서 정부의 세수입조차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스스로도 자신의 말을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공화당의 일각에서도 이미 감세법안의 여파로 가난한 이들과 나이 든 이들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를 큰 폭으로 축소시켜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가 국제적인 트렌드인가? 국제적으로 세율인하의 트렌드는 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멈추었고 지금은 정체단계에 있다. OECD 국가들은 재정위기를 계기로 다국적기업에 대한 과세강화를 과거와 다른 차원의 강도로 시도하고 있다. EU가 최근 우리나라를 조세회피처의 하나로 분류한 것도 크게 보아 그 일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세율인하 추세가 짧은 시간 내에 세율인상 추세로 반전되기는 어려우나 과세행정 강화는 주요 국가들에서 기업에 대한 세수입 증가로 나타날 것이며 장기적으로 세율인하 트렌드 반전의 전 단계라고 보아야 한다.

 

간과하면 안되는 중요한 내용 하나는 미국의 법인세 체계와 우리나라의 그것은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은 법인세 납부 후 남은 소득의 큰 부분을 주주에게 배당한다. 높은 배당성향은 법적인 강제는 아니지만 자본시장에서의 경쟁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배당된 소득에 대하여 개인소득세로 또 과세된다. 법인에 대하여 낮은 세율을 적용하여도 상당한 부분은 개인소득세에서 국가로 회수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법인에서 낮은 세율로 과세되면 기업의 배당성향도 낮고 배당된 부분에 대한 개인소득세 과세에 있어서도 배당세액공제로 세금을 거의 대부분 공제해주기 때문에 국가로 회수가 매우 작은 부분에 대하여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법인세 인하가 기업의 투자도,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그리고 미래의 세수입도 늘려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법인세의 투자유인효과, 일자리창출효과, 경제성장효과, 그리고 외국자본유인효과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 많은 투자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성격의 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인세 감면의 명분은 더 허약해진다.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지도 못하면서 기업의 유보이익만을 증가시키는 법인세 인하는 재정적자를 만들고 필요한 정부지출을 어렵게 하며 소득양극화를 방기하기에 경제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크다. 미국이 선택한다는 이유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결격사유가 명백한 정책대안을 우리가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이다. 레이건 시기에 이루어진 미국의 경제사회적 퇴행을 트럼프는 더 가속시키려고 하고 있다. 트럼프의 법안은 수년 내에 철회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가늠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흔적을 미국사회에 남길 것이다.

 

<김유찬 |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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