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2·28 합의 이후, 여전히 남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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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12·28 합의 이후, 여전히 남는 의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4. 7.

2015년 한국 외교의 끝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한·일 양국 정부의 12·28 합의로부터 100일이 지나고 있다. 합의 직후부터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국 정부로서는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굴욕적인 합의였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합의문의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반대 행동에 나섰다.

그래서일까. 1월13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어디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합의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오로지 기자와의 약속된 질문에 “현 상황에서 최상의 것을 받아내 제대로 합의되도록 노력한” 결과라고 답변했다.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한 후 ‘책임’을 표명했고,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정부에서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부로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것이다.

외교부는 이러한 입장을 홈페이지를 통해, 그리고 2월에는 팸플릿을 발행해 여러 비판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옹호했다. 그 핵심은 12·28 합의가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들은 고통을 위로받지 못했다며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심지어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정부가 발견한 자료 가운데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음에도, 정부는 그동안 준비해 온 백서와 보고서를 감추기 바빴다. 한국 정부가 생존 피해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들은 제2의 가해일 뿐이다.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뒤로 위안부 문제 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글이 붙어 있다_연합뉴스

외교부는 팸플릿에서 앞으로도 전시 성폭력 등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국제사회의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일본 심의에서 일본 측 대표가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발언했는데도 한국 측에서 반박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여성가족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은 인권에 관해 발언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제회의에서 합의문을 평가하려는 한국 측 학자의 연설이 취소된 일이 있었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는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외교 보호권을 스스로 포기한 대응이다.

정부는 틈만 나면 역사의 교훈을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의 사회교과서 역사 영역에서 교육부의 편수용어인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빼버렸다. 지난 3월18일 검정을 통과했다고 발표한 일본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강제적’이란 표현은 없었다. 대부분 ‘전장에 보내졌다’는 표현에 그쳤고,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소개하는 내용은 대폭 늘어났다. 양국 모두 피해와 가해의 기억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신주백 | 연세대 HK 연구교수



12·28 합의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역사성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주권을 방기하고, 미래 기억을 약화시켜 왔다. 심지어 비판을 옥죄어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국내에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뿐이다. 재단의 피해자 지원 이외에 무언가를 할 생각이 있는지 걱정이다. 차라리 1엔만 받겠다고 했다면 국가의 위신과 국민의 자존심이라도 세웠을 텐데. 국제적으로는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북한을 더 세게 압박하고 있다. 한·일 협력으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안정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남북한 대결 구도를 강화하며 역사적 정체성의 뿌리를 흔들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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