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표정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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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표정외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4. 28.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상대로 구사한 ‘표정외교’를 둘러싸고 진의가 뭔지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 22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아베 총리와 만났을 때와 달랐다. 온화한 미소를 잘 짓는 평소 모습에 비춰 당시 시 주석의 표정은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고 어두웠다.

시 주석이 웃는 장면은 중·일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반둥회담에 앞서 양국은 부단히 접촉을 해왔다. 지난달 보아오포럼에서 시 주석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를 만났고,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달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회견에서 올해를 중·일관계의 시험대이면서 기회로 규정했다. 이런 기류로 미뤄 다자외교 무대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 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에게 미소지으며 실리를 위해서라면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를 만나 웃을 줄 알며, 위엄을 접을 줄도 아는 유연한 지도자란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줬다. 오는 9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미국과의 갈등 요인을 줄이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일본을 유인하기 위해 실리외교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물론 양국 관계가 역사문제를 묻어두고 앞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일본이 2차대전 중 저지른 만행은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국 국영 TV에서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항일 드라마가 방영된다.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반둥회담을 소개하면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시 주석은 양손을 의자 손잡이에 걸치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인 반면 아베 총리는 두 손을 모으고 시 주석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미소짓는 시 주석의 모습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중국이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통제되는 사회라 하더라도 역사문제에 있어 시 주석이 평소 언행과 원칙을 내팽개쳤다는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이 변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_ AP연합


문제는 시 주석의 표정외교가 우리 외교의 경직성과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게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얼마나 대일 외교의 경색국면을 풀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 왔는지 궁금하다.

남북한과의 관계에서 시 주석의 표정외교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음달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전승절 기념행사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혹자는 북한의 행태상 막판까지 참석을 저울질할 것이고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지기엔 사전 교감이 너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그의 참석은 확정적이며 중·러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일부 정상들과 접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올 들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모스크바에서 시·김 회동이 이뤄진다면 어떤 모습이 연출될 것인가.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 주석은 냉랭한 표정을 지을까. 오는 9월에는 베이징에서 역시 2차대전 전승행사가 열린다. 그때 시·김 회동이 성사된다면 시 주석은 아베 총리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소를 보여줄 것인가.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도 한·일관계도 막혀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역사상 최고의 관계라는 중국은 안갯속을 헤치며 실리를 좇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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