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와 ‘방사능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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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방사능 올림픽’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0. 21.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쿄를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 적임지로 홍보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이렇게 말했다. “일각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 도쿄에는 어떠한 위험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말은 일본 주류 언론이 보기에도 좀 과했던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보수적인 도쿄 도지사 이노세 나오키도 완곡하게나마 이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아베의 말은,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뜻이지 “지금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예전 칼럼에서 소개한 적 있는 반원전 저널리스트 히로세 다카시의 반응은 이보다 좀 더 직접적이다. 히로세가 보기에 아베의 말은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다. 그는 이 거짓말을 전 세계, 특히 전 세계 스포츠계에 알리고자 했다. 그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 꿈을 꾸고 있는 젊은 선수들과 코치, 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을 썼다. 그는 영문으로 된 이 편지를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각국 사무소에 보냈으며, 다른 언어들로도 번역 중이다. 이러한 행동은 2020년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바라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올림픽 유치에 고무돼 있는 도쿄 시민들에게는 매정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실을 숨기는 것이야말로 매정한 행동이고, 나아가 범죄적 행위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 (출처 :AP연합)

그의 편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도쿄의 방사능 수치는 위험한 수준이다. 도쿄 시내 한 공원의 흙에서 체르노빌 핵 참사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방사능이 관측됐다. 후쿠시마와 도쿄 사이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방사능에 오염된 구름이 내려오는 데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후쿠시마 제1원전 내에서는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핵 연료봉이 과열되고 녹아서 닿는 물체들을 계속 녹여버렸다. 원자로 바닥을 녹이고, 건물 바닥의 콘크리트까지 녹여 결국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 도쿄전력 직원들은 지난 2년반 동안 필사적으로 원자로에 물을 부었지만 그 물이 녹아내린 연료봉까지 도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런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원자로에 부어진 물은 바다로 유입된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표수의 바다 유입을 늦출 수는 있지만 지하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히로세는 쓰나미가 닥칠 때 해수면이 낮아질 때 해안선 주변의 우물들 수위도 낮아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지하수와 바닷물이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 지하수는 해저 땅 밑으로 유입되어 결국 바닷물로 솟아난다. 이걸 막을 길은 없다.


정부 대변인들은 태평양의 방사능 수치가 안전 기준을 넘어선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베의 말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히로세는 편지에서 “이는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각 층을 지날 때 살아있다고 해서 ‘지금까진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도쿄 쓰키지(築地) 어시장에서 방사선량이 0.05시버트로 정상치보다 조금 높게 측정되었다. 생선의 방사선량을 재는 기기 주변에서는 2~3배가량 더 높게 나왔다. 일본의 시장에서는 생선과 농산품에 원산지 표시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북지방의 생산물은 사지 않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은 이 지방의 산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 원산지 표시를 고친다. 통조림에 포장한 음식과 식당에서 조리하는 음식은 원산지 표시조차 하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정부의 방사선 허용치는 “저준위 방사선 폐기물의 기준치와 같다”.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의 방사선 수치를 낮추기 위해 표토만 채취해 비닐봉지에 보관한다. 하지만 그 봉지들을 보낼 곳이 없다. 어떤 지역도 그걸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산처럼 쌓인 봉지들이 후쿠시마 지역에 흩어져 있게 된다. 이 봉지들은 비바람과 눈서리를 맞고 결국 흙이 터져나오게 된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아베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쓴 성명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언어란 참으로 놀라운 도구이다. 진실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글러스 러미스 | 전 도쿄 쓰다주쿠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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