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축제, 투쟁과 삶 예술의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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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아비뇽축제, 투쟁과 삶 예술의 용광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7. 12.

늦가을을 연상시키는 스산한 날씨가 파리의 초여름을 완전히 몰수해 버리더니, 7월에 접어들며 드디어 맑은 하늘이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상공에 등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7월은 바캉스 시즌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삶의 가장 치열한 순간이 펼쳐지는 때이기도 하다. 넉넉한 태양을 누릴 수 있는 남쪽으로 사람들은 이동하고, 거기선 수많은 축제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올해 67회를 맞는 아비뇽축제는 가장 큰 이목을 집중시키는 여름 축제의 꽃이다. 


아비뇽축제를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로 등극시킨 건 아비뇽 OFF. 초대받지 못한 극단들이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트럭에 짐과 소품을 구겨 넣고 인구 9만명의 작은 도시로 몰려온다. 올해도 아비뇽 OFF에 참가하는 극단 수는 신기록을 갱신했다. 20개국에서 온 1066개의 극단은 1258편의 공연을 7월 한 달간 올린다. 전 세계 공연관계자들은 물론 열정에 가득 찬 유료 관객만 230만명에 이르는 아비뇽 무대에 오르는 것은 세상 모든 연극인들의 꿈. 한국에서도 3개의 극단이 올해 이 꿈의 무대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연극의 도가니에는 웅대함과 화려함만이 꿈틀거리진 않는다.


프랑스극단의 거리연극


늘어나기만 하는 수요에 비해 이 작은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공연장 숫자는 제한된 탓에 학교, 창고, 주차장 등 아비뇽 내 모든 널찍한 공간은 축제 중에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이 때문에 형편없는 시설에도 불구, 극단들은 높은 대관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연이 끝나고 남은 시간, 배우들은 골목을 누비며 관객들에게 공연을 홍보하고, 거리의 모든 벽은 숨 쉴 틈 없이 포스터로 메워진다. 아비뇽축제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자기를 알리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곳곳의 축제와 공연장으로부터 초대받으며 탄탄대로를 일구는 극단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격렬한 예술이 남기는 피로와 더불어 비참함을 안고 떠나야만 하는 극단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뇽으로 찾아드는 관객과 세계 연극인들의 아비뇽을 향한 열정이 줄어든 적은 없었다.


단 한 번 아비뇽축제가 취소된 적이 있다. 2003년 프랑스 문화예술인들의 생존과 더불어 그들이 누리는 찬란한 영광에 대한 보증까지 맡아왔던 공연영화예술인 실업급여제도가 대폭 수정된 것에 저항하기 위해 프랑스 연극인들이 전면 파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무려 750개의 공연이 단번에 취소됐고 수천, 수만개의 꿈들은 일년 뒤로 유보된다. 가장 큰 연극인들의 축제는 가장 좋은 연대와 투쟁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한 사례였다. 


‘경제위기는 문화를 덜 중요하게 할 수 없다. 경제위기는 문화를 더욱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든다. 문화는 사치가 아니며, 경제위기라서 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 그것은 미래이며 희망을 창조하기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도구다’라고 말한 사람은 사회당 대선 후보 시절의 올랑드였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와 교육에 더욱 큰 투자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러나 집권 후, 사회당 정부는 지난해 놀라운 수준으로 문화예산을 삭감한 이후(정부 예산 대비 0.68%), 다시 내년도 문화예산의 대폭 삭감을 예고하고 나섰다. 무려 30년 이전으로 후퇴를 감행하려 드는 무지막지한 사회당 정부의 선택에 예술인들은 강력한 경고장을 내민다. 프랑스 공연예술계 노조들이 일제히 토요일 아비뇽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AP연합)


“매력적이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인 나라는 삶이 비실대며 떠나가는 나라보다 빚을 더 잘 갚을 수 있다”고 했던 올랑드 자신의 말을 더없이 잘 입증하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이들은 연극하며 또 투쟁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어쩌면 아비뇽축제가 누리는 오늘의 영광을 이룬 두 가지 불가분의 요소이기에.



목수정|작가, 파리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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