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남북경협, ‘줄탁동시’의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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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아침을 열며]남북경협, ‘줄탁동시’의 지혜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3. 12.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연달아 알려지면서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한국 내 사드 기습배치 문제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사태 반전이 놀랍다. 남북경협의 가장 큰 장애물인 정치적 긴장이 해소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남북경협으로 눈길이 쏠린다. 더구나 올해는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이 발표되면서 북방정책이 본격 추진되고 남북경협이 첫발을 뗀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 정세의 해빙무드는 한국경제가 지긋지긋한 ‘안보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임과 동시에 남북경협 복원을 위해 무척 다행스럽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조건이 있지만 남북경협 재개 문제는 앞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랐던 남북경협의 싹을 다시 틔우고,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줄탁동시’의 지혜가 요구된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에서 병아리가 두드리는 동시에 어미가 밖에서 알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 어미가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하며 동시(同時)에 이뤄져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남북경협에 적용한다면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북한의 노력과 한국의 대북지원 및 협력이 잘 맞아 돌아가야 남북경협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북한이 폐쇄적 경제체제임은 분명하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결과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시장화는 ‘돈주’라 불리는 거대자본이 공장, 무역회사, 상점 등 여러 분야에 개입하면서 시장을 확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외국자본유치를 추진했고, 나진·선봉 등 기존 5개 중앙급 경제특구 개발과 별개로 19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도 신설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지난 2월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시장 숫자가 1년 동안 46개가 증가하면서 482개에 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화의 바람은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내부에서 형성될 여지가 없는 북한으로서는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이나 한국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 북한 지도부는 시장경제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외부로 보내야 한다. 이것이 북한의 줄이다.

 

한국의 탁은 무엇이어야 하나. 북한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협애한 시각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경제적 교류확대에 나서야 한다. 밖에서 두드려주지 않는다고 하면 북한 경제가 자생적으로 활로를 찾긴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수정부가 북한의 변화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남북경협의 소중한 싹을 밟아버린 것은 잘못된 일이다. 2003년 개성공단 착공으로 남북경협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지만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선택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재인 정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원칙하에 교류협력을 이끌어 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를 본보기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로의 가치와 삶의 방식은 존중돼야 한다는 양안의 안목은 한반도에도 유효하다. 양안관계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처음 열렸을 때 얼어붙어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자극을 받은 양안은 지속적으로 소통, 교류했고 결국 2010년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2016년 초 대만 독립파인 차이잉원(蔡英文)이 집권한 후에도 양안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노력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일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한국경제가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분명하나 성급한 통일 대박론을 거론해선 득이 될 게 없다. 꾸준히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촉진시키고,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을 얻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정치·안보 문제는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어느 날 거대한 진전을 이룰 수 있지만 경제는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긴 어렵다. 앞으로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가 돌출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모두 정치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경협을 위한 의제발굴과 치밀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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