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진핑의 ‘백 투 더 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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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아침을 열며]시진핑의 ‘백 투 더 퓨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8.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군 행보가 심상찮다. 새해 벽두부터 군복을 입었다. 지난 3일 ‘2018년 군 동원훈련 대회’가 열린 허베이성 중부전구 훈련장에 참석해 훈련 명령을 내렸다. 시 주석은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주석이 직접 훈련 동원 명령을 내린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메시지가 있는 행보란 의미다.

 

다음 일정을 보면 짐작이 간다. 시 주석은 육군부대를 시찰한 자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송골봉 전투를 언급했다. 이 전투는 1950년 11월30일 중국군 112사단 100여명이 북한 서부 송골봉에서 미군 2사단 7000여명과 사투를 벌였고, 중국군 7명만 살아남아 진지를 지켰다고 중국 전사에 기록돼 있다.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집권 2기를 출범하며 ‘강군몽’을 선언한 시 주석이 올해 ‘군사 굴기’를 본격화할 뜻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신년사를 발표할 때는 젊은 시절 군복 입은 사진을 뒤편에 놓았다. 사진 자체가 메시지다.

 

중국은 꿈을 꾸고 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이다. 청나라는 1842년 아편전쟁으로 영국 함대에 무릎을 꿇었다. 난징에 정박 중인 군함 위에서 치욕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홍콩을 넘겨줬다. 100여년이 지난 1949년 마오쩌둥은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 민족이 일어섰다”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시 주석은 그로부터 또 100년 뒤인 2050년 ‘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부적으론 거칠 게 없다. 사상도, 당·정부 체제도 그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도광양회(韜光養晦·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림)에서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할 일을 함)로, 본격적인 굴기의 시대로 나아가려고 한다. 시 주석이 얘기하는 ‘신시대’는 인류 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때로, ‘백 투 더 퓨처’ 하겠다는 것이다(<백 투 더 퓨처>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1985년 만든 영화 제목이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로 표현된다. 중국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일본을 앞서며 세계 경제 2위에 올랐다.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집계 기준으로 미국 19조3621억달러, 중국 11조9375억달러다. 군사비 지출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은 6110억달러, 중국은 2160억달러다. 1·2위 간 격차는 여전히 크다. GDP와 군사비 3위는 각각 일본(4조8844억달러)과 러시아(692억달러)인데 저만치 뒤에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한다. 하지만 G2로 같이 묶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활용해 2인자가 더 커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규모 2인자는 영국에서 독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지난 연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한 공세를 예고했다.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한 것이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상황이 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 판에 러시아도 끼어들 태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판 ‘중국몽’인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노린다. 미국 일극 체제는 물론, 미·중 G2 시대로 고착화되도록 놔두지 않으려 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과 세계질서를 양분했던, 구소련 붕괴 이전인 그때로, ‘백 투 더 퓨처’ 하려고 한다. 강대국들의 민족주의 주창은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국이 초강대국의 DNA를 펼쳐보겠다는데 지금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남이야 뭐라든 뒤집거나 버렸다. 새해맞이 첫 일성도 “2018년 미국을 더욱 위대하게”였다. 올해도 그런 기조는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의 고립 자처는 국제사회의 리더십 포기로 연결됐다. 중국이 움직일 공간을 넓혔다. 중국은 그런 미국을 향해 ‘인류 공동 운명체’를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구조가 서구와 딴판인 중국이지만 미국의 위상이 예전 같지 못하니 세계가 중국의 언행을 주시한다.

 

미·중의 작용과 반작용, 도전과 응전은 2018년을 달굴 것이다. 그 사이에 놓인 한국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부르짖었지만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는 지켜져야 할 가치라는 점도 확인됐다. 어느 일방의 뜻대로 국제질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도 ‘회복력(resilience)’을 발휘할까. 국립외교원이 2017년을 평가하고, 2018년을 전망하면서 선택한 단어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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