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실패해선 안될 트럼프의 선택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아침을 열며]실패해선 안될 트럼프의 선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3. 1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 제안을 수락하면서 ‘한반도 시계’는 더 빨라졌다. 트럼프는 사상 처음이 될 북·미 정상회담 결정을 스스로 “위대한 뉴스”라고 했다. 준비 부족 등으로 연기설이 나왔지만 지난 금요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5월 회담’을 재확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회담 준비와 후속 조치를 주도할 국무장관으로 이동시켰다. 트럼프는 지금 자신감이 넘쳐 있다.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무엇이 트럼프를 이토록 강렬하게 유혹한 것일까.

 

“트럼프의 사고방식에서 판단해야 한다. 자꾸 정상적인 상황을 갖고 판단하려는데 그렇지 않다. 트럼프는 남는 장사라고 하면 지른다. 얻는 것이 확실하면 주는 것도 확실하다. 비즈니스맨의 기본적 속성이다. 관료들의 실무적 접근과 많이 다르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봤다. 트럼프의 전격적인, 톱-다운 방식에 의한 북·미회담 결정은 “즉흥적”이라는 미국 조야의 우려를 낳았다. 미국의 지금까지 북핵 협상에서, 적성국가를 대하는 방식에서 보여줬던 방식과 절차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등 전임 행정부의 북핵 대응 방식을 비판했다. 북한과의 잘못된 합의로 허송세월하느라 핵·미사일 능력만 키워놓았다는 것이 트럼프의 인식이다. 그러면서 방치하지 않겠다, 직접 해결하겠다고 했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와 함께 공을 던지는데 받지 않을 수도 없다. 허언을 했다는 말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 담판론은 북핵 협상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트럼프도 “그들(전직 대통령들)은 (김정은과) 만날 수 없었을 거다. 내가 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은 과연 비핵화를 할 것인가.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것은 ‘그럴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의심이 많다. 참모들에게 지난 대선에서 자기를 찍었는지 대놓고 물어볼 정도다. 트럼프는 북한의 진정성을 어떻게 읽었을까. 교차 검증론이 있다. 북·미 접촉을 통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보고받았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얘기해보니 그 보고 내용과 다르지 않았고, 이는 남한 특사단이 김정은을 만난 결과와도 같았다는 것이다. 한국대표단 면담 45분 만에 김정은 제안을 수락한 것도 무턱대고 베팅을 한 게 아니라 적어도 3단계의 검증 절차를 거쳤다는 분석이다. 다만 과거와 유사한 수준의 합의가 성에 찰 리 없다.

 

국제 정치는 국내 정치 상황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트럼프의 집권 2년차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13일 펜실베이니아주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졌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20%포인트 차로 압도했던 선거구였다. 지금 분위기라면 11월 중간선거는 암담하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남은 임기는 ‘식물 정부’가 될 터다. 트럼프의 연임은 언감생심이다. 한 전문가는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요약하면 대통령답지 않다, 정부답지 않다는 것이다. 거꾸로 지금 트럼프에겐 대통령다움, 정부다움이 필요하다. 대통령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외교”라고 했다. 실제 취임 후 ‘국제질서 파괴자’로 비판받은 트럼프가 한반도 상황을 대결에서 대화로 물줄기를 바꿔놓자 칭송이 줄을 잇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김정은도 여유 부릴 처지는 아니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장기 집권 체제를 확고히 다지려면 경제를 개선해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일상화, 구조화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주장하지만 핵을 머리에 이고 경제까지 챙길 수는 없다. 트럼프 임기가 1년밖에 안됐다는 것은 기회 요인이 된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2000년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됐지만 당시는 정권 말기였고, 대선 이후 흐지부지됐다.

북·미회담에 합의한 지 열흘 됐지만 둘 다 깊이 들어왔다. 이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판을 뒤엎기 어렵다. 이미 트랙 위에서 기차는 달리고 있다. 미국의 종착지는 북한의 비핵화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이다. 북·미의 최종 종착역은 서로 다르지만 한쪽이 빨리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둘이 동시에 도착해야 하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역이다.

 

문제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사반세기 북핵 협상의 역사에서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상황이 더 나빠졌다. 그만큼 난제라는 뜻이다. 북·미 정상이 만나서도 접점을 찾지 못한다? 두 사람의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미래가 아득해진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안홍욱 국제부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