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가치를 공유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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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여적]가치를 공유하는 나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4. 8.

국가 간 외교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국교를 맺은 사이는 우호·협력국 정도이다. 사인(私人) 간의 관계로 치면 ‘아는 사이’쯤 된다. 거기서 약간 더 나아가면 동반자 관계라는 표현을 쓴다. 친구 사이라는 의미다.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특정 사안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이다. 지금 한·중, 한·러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양자관계를 넘어 글로벌 현안까지 협력한다는 의미다. 이 정도면 국제관계에서는 최상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를 뛰어넘는 미사여구가 있다. 한·미, 한·일 관계를 지칭할 때 쓰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말이다.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법치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미국과는 안보·경제동맹을 넘어 가치동맹을 추구한다는 취지로 사용한다.

일본이 다음주 공개할 예정인 ‘외교청서’에서 올해에도 한국에 대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국가”라는 표현을 뺐다고 한다. 대신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서술했다는 것이다. 양국관계가 조금 나빠졌다고 해서 한국과 더 이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일본의 경박함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화낼 일은 아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말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남용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요새 이 표현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포장하는 말로 쓰인다. 민주주의·법치·인권에 약점이 있는 중국과 선을 그음으로써 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일동맹의 틀 안으로 한국을 끌어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변질된 것이다. 지난달 말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열어 북핵·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놓고 “3국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나라”라고 설명한 것이 단적인 예다.

동반자든, 전략적 관계든, 가치동맹이든 아무리 화려한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도 국제관계에서 각국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결국 ‘힘’과 ‘자국의 이익’일 뿐이다. 미·일과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 득이 되지도 않는다면 더 이상 집착할 이유도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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