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김영철과 조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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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여적]김영철과 조명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5. 31.

북한에 미국은 금단의 땅이다. 외교관계가 없어 북한 주민의 미국 입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의 미국 내 이동도 엄격히 제한된다. 일정한 지역을 벗어나려면 일일이 미 국무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00년 9월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망신살이 뻗쳤다.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아메리칸항공이 신체보안검색에 응하라고 요구하자 항공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국가원수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였다.

 

불과 한 달 뒤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첫번째 방미였다. 미국은 항공사 측에 협조를 요청해 이민·세관·검역 절차를 생략하는 등 특별 예우를 했다. 조 부위원장은 군복 차림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 29일 미국을 전격 방문했다. 북한 고위인사로는 18년 만의 일이다. 미국은 제재 대상인 그를 위해 여행제한 조치를 일시 면제했다. 김 부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인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문제를 논의한다. 양측 간극이 큰 상황에서 두 사람의 담판은 회담 성사의 마지막 시험대나 다름없다.

 

김 부위원장이 방미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한다면 일이 잘 풀렸다는 의미가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내는 친서를 전달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편지·전화하라”고 썼던 트럼프는 김 부위원장의 방미에 대해 “나의 편지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라며 환영했다.

 

18년 전 조 부위원장의 방미는 성공적이었다. 핵카드가 없었는데도 상호주권 인정과 적대관계 청산이라는 합의를 끌어냈다. 핵보다는 평화를 향한 양국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 부위원장은 항일투쟁 때 연락병으로 시작해 평생을 군에서 봉직한 천생 군인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군인이지만 수십년간 대남군사당국대화에 종사해온 회담전문가이기도 하다. 김 부위원장의 방미가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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