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날지 못한 미사일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여적]날지 못한 미사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5. 2.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1980년대 중반. 반군인 무자히딘과 맞붙은 소련군 전차부대 지휘관이 휘하 부대에 진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20여대의 전차 가운데 움직인 것은 5대에 불과했다. 전투는 소련군의 패배로 끝났다. 조사 결과 움직이지 않은 전차는 겉만 멀쩡했을 뿐 핵심 부품이 없었다. 장교와 병사들이 부품을 팔아먹은 사실도 드러났다. 무자히딘은 전략의 일환으로 소련군에 마약을 공급했는데, 중독된 장교와 병사들이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전차 부품을 빼돌린 것이다.

한국군도 아찔한 순간을 가끔 경험한다. 2014년 10월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해군 유도탄 고속함이 포를 쐈지만 포탄이 날아가지 않았다. 포가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그사이 북한 경비정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며칠 뒤엔 경기도 연천면사무소에 북한군이 쏜 고사총 탄환이 떨어졌다. 대북전단 풍선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군의 대포병 레이더는 먹통이었다. 군은 3시간 뒤에야 탄피를 발견하고는 뒤늦게 북에 경고사격을 했다. 디지털 장비가 작동하지 않으니 아날로그 방식으로 대처한 것이다. 당시 장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큰 싸움으로 번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숨이 나온다.

북한 무수단 추정 미사일 발사_경향DB

결정적인 순간에 군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다.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일이다. 장병의 목숨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군 장비 미작동은 장비 자체의 결함 탓인 경우가 많다. 방산비리의 결과일 터이다. 장비 관리 부실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군이 단단히 고장 난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북한이 지난주 무수단 미사일을 3차례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정거리 4000㎞로 괌까지 타격이 가능하다는 미사일이 발사 후 공중폭발하거나 추락했다. 30기가 채 안되는 값비싼 미사일을 열흘여 만에 3기나 잃었으니 심각한 전력 손실이라 할 만하다. 실전 배치 10년이 지난 미사일인데 이런 중대 결함이 드러난 북한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핵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발사해 6일로 예정된 제7차 당대회를 빛내려던 북한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것 같다.


조호연 논설위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