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제2차 우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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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제2차 우주전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8. 13.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구소련의 공군 중위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에 나가 지구를 본 뒤 한 말이다. 소련이 1957년 10월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을 때 미국인들이 받았던 충격(스푸트니크 쇼크)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소련은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까지 성공한 것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우주 개발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다. 우주 개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군사기술에 활용할 수 있고, 국민들의 사기를 제고하며 나라의 기술과 경제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초반은 소련의 승리가 이어졌다. 인공위성 발사에서 소련에 3개월 뒤진(1958년 1월, 익스플로러 1호) 미국은 유인 우주선에서 설욕을 노렸지만 이 또한 10개월(1962년 2월, 존 글렌) 뒤처졌다. 인류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1963년 6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최초의 우주 유영(1965년 3월, 알렉세이 레오노프) 등도 모조리 소련의 몫이었다.

 

양대 강국의 우주전쟁은 달 탐사로 이어졌다. 여기서도 시작은 소련이 좋았다. 1959년 9월 달 표면에 최초로 우주선(루나 2호)을 날려보낸 소련은 달 뒷면 촬영(1959년 10월, 루나 3호), 달 착륙(1966년 2월 루나 9호) 등에서도 미국에 앞섰다.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미·소의 우주전쟁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데서 역전됐다. 잇단 발사 실패 등으로 소련이 주춤하는 사이 1969년 7월21일 아폴로 11호를 탄 미국인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이후 미국은 우주왕복선 개발 등에서도 소련에 앞서 나갔고 냉전이 끝나면서 우주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우주군’ 창설을 선언하면서 30여년 만에 강대국들 간의 우주전쟁이 다시 시작될 조짐이다. 이번에는 중국이 상대다. 중국은 2045년까지 세계 최고의 우주 기술 강국이 되겠다는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우주군 창설에 대해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지난 11일 “미국이 우주에서 절대 패권을 거머쥐려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등 제2차 우주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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