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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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2)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2. 11.
김홍수영 /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 samarakim01@hotmail.com


큰 사회 담론에 대한 일차적 평가 

사실 캐머런이 ‘큰 사회’ 구상을 처음 발표했을 때, 여론의 전반적인 반응은 어리둥절함이었다. 

보수파 역사가 제임스 헌터는 큰 사회는 ‘시민의 책임감과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참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철학’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파와 좌파가 ‘큰 사회’라는 모토에서 받은 첫 인상은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큰 사회 정책과 관련한 시사 및 학술토론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토론 주제는, "그래서 결국 보수당이 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였다. 
추상적인 뜻 때문에 비판의 초점도 다양했다. 일부 보수 여론은 큰 정부가 제 3의 길을 따라서 한 ‘블레어의 유령’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했고, 진보 여론은 국가의 힘이 없어도 풀뿌리 시민사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보수당 내부에서는 캐머런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큰 사회 프로젝트를 위해 네 도시를 ‘전위 지역 (vanguard area)’으로 지정했는데, ‘전위’란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와 레닌이 사용했던 용어다. 또한 공동체 운동 활동가들을 정부로 직접 초대하며 공동체 조직화(community organising)와 주민 지도력(group leaders)의 발굴을 격려한 것은 사회개혁가인 알린스키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큰 사회 프로젝트를 ‘보수파의 급진적인 혁명’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당에서는 큰 사회 담론을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대한 사회라는 수사로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철회하려는 의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밀리반 노동당 당수와 더불어 노동당 전 장관인 크리스 브라이언트도 큰 사회 정책을 ‘싼 정부’ 정책이라고 비하했으며, 6만 명의 회원이 속해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사회단체인 Unite the Union도 큰 사회 담론은 ‘시장화’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큰 사회는 그저 담론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강령과 공약은 대부분 지루하기 마련인데 큰 사회 구상은 흥미진진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상이 상당히 독특하고 세밀하고 급진적인 프로그램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회 프로젝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실제 실행되는 하위 프로그램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큰 사회 프로그램들

큰 사회 기획 중에 먼저 관심을 끄는 점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동체 조직화(community organizing)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전 정부들도 지역의 시민단체나 자선단체 및 자원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들을 해왔다. 그러나 캐머런 내각은 이와 같은 간접적인 지원을 넘어서, 정부가 직접 5000여명의 공동체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훈련시켜, 이들이 각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조직을 건설하고, 확대시키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외에도 16세의 아이들을 활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는 목적으로 이른바 시민권 서비스(National Citizenship Service)라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릴 때부터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지역공동체 활동에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공동체 조직화’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알린스키에게 영향을 받는 빈민운동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진보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 조직 운동에 국가가 개입하여 주민과 학생들을 훈련하는 방식은 알린스키의 사상보다는 상명하달식으로 마을을 조직했던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 육성 과정을 떠오르게 한다. 때문에 제럴드 워너라는 논평가는 ‘위로부터 명령하는 정부의 정책을 철폐한다고 선언한 정부의 수상이 큰 사회 정책을 사회에게 하달했다’며 캐머런의 자가당착적 말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큰 사회 구상을 한국식 새마을 운동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큰 사회 구상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정부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행정 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 골자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지방정부에서는 매달 시민들에게 각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 각 지역의 범죄율과 종류 등을 밝힐 예정이다. 
또한 지역사회 주민들이 지방행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지방정부의 예산계획, 의결, 집행과정을 공개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곳에 얼마의 예산을 분배할지에 대한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정부가 지방세를 올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이나 우체국이나 지역의 가게들 문을 닫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도 공동체 시민들에게 부여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노동자소유기업 등 제 3섹터 시장을 육성하며, 공공영역의 서비스를 제 3섹터 시장에게 넘긴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예를 들어, 공공영역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소유기업을 창설하여 독립하면, 지방정부가 지금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던 사회복지서비스 프로그램들을 이들에게 위탁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지역의 전철 및 마을버스 운영, 인터넷망 구축 사업, 쓰레기 수거 및 재활용 사업, 학교운영 등도 지역주민과 민간에게 넘기겠다는 계획도 큰 사회 구상에 포함되어 있다.




정책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재원확보 방법에 대해서는 더 파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공동체 운동가를 훈련시키고, 협동조합 및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등 ‘큰 사회’ 프로젝트에 드는 기금을 은행의 휴면예금으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몇 십 년 간 영국 은행들에 잠자고 있는 휴면예금이 약 4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같은 휴면예금을 모아 ‘큰 사회 은행(Big Society Bank)’을 설립하면 정부의 예산을 쏟지 않고도 자선단체와 사회적 기업, 자원봉사 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캐머런 내각은 위와 같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기념하고 홍보할 ‘큰 사회의 날(Big Society Day)’을 지정하여 공포할 것이라고도 한다.

큰 사회 프로그램들에 대한 평가

큰 사회 프로젝트의 일부 사업들은 아직 지방자치행정이 완전히 뿌리내렸다고 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다소 무모해 보인다. 예산집행을 지역주민에게 공개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한다는 것이나, 학교 운영에 지역사회 주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이 폐쇄적인 곳에서는 자칫하면 지역의 유지나 일부 사회단체가 예산집행이나 사업위탁을 독차지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보다는 자치의 경험이 오래된 영국사회의 경우 이러한 일이 완전 허황된 계획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큰 사회 기획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이미 노동당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사업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예전부터 ‘우리 길거리 고치기(Fix My Street)’ 운동을 진행해 왔다. 그것은 지방정부가 연간 집행해야 하는 예산이 남았을 때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고 공사하는 데 돈을 쏟아 붙는 관행을 없애고, 실제로 꼭 고쳐야 하는 거리를 보수하는 데 예산을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픽스마이스트리트(www.fixmystreet.com)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주민들이 직접 발견한 벽의 낙서, 고장 난 가로등, 깨진 보도블록을 신고하는 것이다. 구글의 지도창을 이용해 문제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면 관공서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다음 날 해당 관공서에 문제가 보고되고 바로 해결될 수 있다. 
이는 동네 구석구석을 전부 살피기 어려운 구청공무원들이 지역 주민들의 협력으로 예산을 꼭 필요한 곳에 집행할 수 있는 효과를 갖는 전략이다. 이 운동을 통해 주 평균 1,000여 건의 문제지역이 정부에 보고되고 있고, 2010년 11월 현재까지 111,467건의 도로공사가 이를 통해 진행되었을 만큼 성공한 정책 아이디어다. 캐머런이 제안한 참여적 예산집행(participatory budgeting)은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큰 사회 정책에 포함된 자유 학교(free school)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미래를 위한 학교 세우기(BSF: Building Schools for the Future)’라는 이름으로 노동당 정부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BSF는 영국 정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학교 리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낙후된 학교 시설을 시장의 자금력을 동원해 개선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BSF는 시장의 논리에 건설 및 진행과정을 맡기지 않는다. 우선 건설회사들은 원칙적으로 학교 주변지역의 주민과 실업자들을 건설노동자로 고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 건설 및 리모델링 과정에 인턴으로 직접 참여하도록 기회를 주고, 그 중 유능한 학생을 건설회사에 특별 채용하는 기회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한 학교 시설은 방과 후에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여 지역 문화센터로 사용하는 것이 BSF의 목적이다. 지역사회, 시장, 그리고 정부가 BSF를 중심으로 매우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 3섹터 시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국은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수가 전체 노동자의 5%를 넘어섰다. 따라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육성은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United the Union이 지적했듯이 첫째는 인력의 문제이고 둘째는 재원의 문제다. 
첫째, 인력 면에 있어서, 영국은 자원봉사활동의 전통이 강한 사회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예산감시에서부터 쓰레기수거, 마을버스 운영까지 민간인들이 참여하려면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처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빡빡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가 정부 행정 전반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사회참여에 할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논평가 에드 웨스트는 결국 종교단체와 모임처럼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일부 사람들만 봉사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The Times는 "만약 마을버스 운영과 같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한 사업을 민간 자원봉사 단체들에게 맡긴다면, 초기에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마을버스를 운전하겠다고 나서겠지만, 결국 몇 년이 못 가서 열정은 식어버릴 것이고 모든 마을버스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고 전망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 년 간 약 3 백만 명의 외국인이 이주해왔을 정도로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되어버린 영국에서, 정부의 조율과 조정이 없이 각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자치를 맡긴다는 것은, 결국 여러 민족과 이민자들의 분열과 분리,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마디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참여에 기댄 사업들은 지속성, 전문성 그리고 형평성 면에서 현저히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재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큰 사회 기획의 핵심재원을 휴면계좌의 예금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예금을 ‘훔치려’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우려가 되었던 점은 결국 정부의 구상이 발표되면서 시민들이 휴면계좌를 다시 살려서 예금을 출금하거나, 휴면계좌를 통해 은연중에 수익을 누렸던 은행이 순순히 기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큰 사회 정책을 실행하는 데 총 4억 파운드의 예산이 들 것이라고 계획했지만, 이보다 훨씬 적은 6천만 파운드로 큰 사회 은행이 출발한다는 발표했고, 따라서 부족한 재원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가디언(The Guardian)과 같은 진보적 언론은 프로젝트가 안정적인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탄탄한 인력과 자본을 가진 시장기업이 공공서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교통, 의료서비스, 인터넷 시설 구축을 민간에게 맡긴다는 뜻은 실체가 모호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시민사회조직에게 맡긴다는 말이 아니라, 시장기업에 맡긴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크로동(Croydon)과 같은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시민사회단체에 정부가 지원하던 예산의 70%를 삭감하기까지 했으니, 큰 사회가 사실 시민사회단체나 공동체 조직을 촉진시킨다는 정책이라기보다 정부의 재원을 줄이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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