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반 폐지와 ‘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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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영재반 폐지와 ‘99.8%’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3. 21.

중국 과기대 영재반의 시작은 황홀했다. 1979년 10대 초반의 청소년 21명이 영재 자격으로 과기대에 정식 입학했다. 가장 어린 학생은 11살에 불과했다. 10년간 문화대혁명이라는 암흑기를 지낸 후 지식 기반이 허물어졌던 당시 중국에서는 이 영재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이들은 ‘지식 황무지 위의 소년 돌격대’라고 불렸다. 돌격대원들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 중 한 명이 닝보다. 과기대 영재반에서 ‘최초의 천재 소년’ 인증을 받은 닝보는 19살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그러나 닝보는 너무 빨리 다가온 성공을 소화시키지 못했다. 1998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영재교육의 폐단을 공개 비판했고, 갑자기 출가를 선언했다. 그동안 베이징대, 칭화대 등 여러 대학이 영재반을 만들었지만 슬그머니 폐지했다. 현재는 중국 과기대에서만 영재반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존폐 기로에 섰다.

 

영재교육에 대한 찬반 논쟁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중국에서는 학생의 성장 속도보다는 질적 성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교육의 획일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없애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개헌안이 지난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99.8%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투표인단 2964명 중 2958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2표뿐이었다. 향후 중국 정치사의 흐름을 바꿀 중요한 결정이다.

 

개헌안 통과 다음날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둘러보았다. 대규모 집회는 아니더라도 혹시 돌발적 항의 퍼포먼스라도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캠퍼스는 역시 조용했다. 29년 전 민주화를 요구하며 톈안먼 사태를 이끌었던 대학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식당이든 강의실이든 헌법 수정에 대해 말을 꺼내는 학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말을 걸어본 대학생들은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공개적으로 국가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외국인에게는 더더욱 중국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결연함 같은 게 읽혔다. 중국 매체들은 압도적 찬성은 압도적 지지를 뜻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번 헌법 수정안은 21개 조항에 따른 역대 최다 수준의 개헌이었지만 표결은 조항별로 이뤄지지 않고 개헌의 찬반 여부만 물었다. 다양한 의견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17일 표결 결과는 더 상징적이다. 시 주석 재선에 대한 표결 결과는 2970명 전원의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시 주석이 2008년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될 때는 반대 28표, 기권 17표가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일사불란한 단결과 획일화된 의견만 강조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획일화된 침묵을 교육받고 있다. 언론과 인터넷 통제에 그치지 않고 학교 교육에서부터 당에 대한 충성을 세뇌시킨다. 대학마다 존재하는 공산당 학생 조직이 여론을 이끌고 중요한 당의 행사가 끝날 때마다 학습 열기를 퍼뜨린다.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삽입한 19차 당 대회가 끝난 후 각 대학은 당 대회 보고 연구에 열을 올렸다. 당 조직뿐 아니라 일반 수업에서도 관련 과제를 내준다.

 

칭화대의 한 교수는 강단에서 헌법 수정에 대해 “개헌은 빅뉴스다. 그러나 토론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뉴스인데 왜 논의하면 안되는 것일까. 

 

40년 전 시작된 과기대 영재반이 실패한 이유는 영재들에게 지워진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특기를 가진 영재가 아니라 중국에 빠른 발전을 가져다줄 영웅처럼 여겨졌다. 이들은 영재일 뿐 돌격대원이 아니었다. 중국 교육부는 2020년까지 의무교육 기간 중 영재반 전형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간은 모두 획일화된 교육을 받게 됐다. 이런 환경에서 중국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개진할 날이 올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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