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철의 특파원칼럼]‘반부패 운동’ 바라만 보는 중국 언론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오관철의 특파원칼럼]‘반부패 운동’ 바라만 보는 중국 언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24.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2일 오후 8시(현지시간) 링지화(令計劃)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에 대한 당국의 조사 사실을 보도했다. 기사 내용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제12기 전국위원회 부주석, 중공 중앙 통전부장 링지화가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현재 조직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 딱 한줄이었다. 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체포됐는지 등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 신화통신 보도는 다른 중국 매체들에 보도 지침이 된다. 이튿날 중국 조간신문들은 제목은 큼지막하게 뽑았으나 기사 내용은 똑같았다. 일부 매체가 의미를 부여했으나 반부패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수준에 그쳤다. 의미와 파장, 구체적인 비리 내용에 관한 보도는 해외 언론의 몫이었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이 체포됐다는 신화통신 보도는 지난 5일 밤 12시에 나왔다. 뇌물수수, 국가기밀 유출 등 혐의를 적시하긴 했다. 상무위원을 지낸 인사가 부패로 처벌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여전히 언론의 이런저런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예고 없이 한밤중에 중대 사안을 신화통신이나 국영 CCTV를 통해 국내외에 알리는 게 중국의 방식이다. 늦은 시각 급작스러운 보도는 차치하고라도 정작 알맹이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올해 중국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반부패였다. 저우융캉과 링지화,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 ‘호랑이(거물급 부패 인사)’들이 반부패 광풍 속에 줄줄이 쓰러졌다. 한가지 의문은 중국 언론의 역할이다. 많게는 우리 돈으로 조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부패 규모와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됐을 부패 행위 속에서 중국 언론이 무엇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저우융캉은 국영 석유기업 경영자를 거쳐 2002년 공안부장이 되고 상무위원까지 지낸 후 2012년 11월 물러났다. 쉬차이허우나 링지화도 최소 수년간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부패를 저질렀을 것이다. 홍콩과 중화권 언론을 중심으로 이들에 대해 숱한 비리 의혹이 제기됐지만 중국 언론들은 침묵했다. 그러다 당국의 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호랑이 때려잡기에 가세하고 있다. 저우융캉을 과거에 사형당한 당의 배반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반부패 의지를 찬양하기에 바쁘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건 중국 특유의 언론관 때문이다. 공산당은 언론 매체에 대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전달하는 채널이 되어야지 부정확한 관점을 보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언론 역시 공산당에 부담스러운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 불신과 혼란을 야기해 궁극적으로 국익에 해가 된다고 여긴다.

홍콩의 신문판매대 운영자가 30일 저우융캉 전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이 부패 연루 혐의로 공식 조사를 받게 됐다는 뉴스가 대서특필된 일간지들을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하고 있다. _ 로이터


흔히 사람들은 “중국에서 안되는 일이란 없다. 사람을 아직 못 만났을 뿐이다”란 말을 많이 한다. 외자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국 관리를 만나 농담으로 ‘돈이 필요하면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나는 당장 100만위안(약 1억8000만원)을 가져오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장) 그만큼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외자기업에 돈을 요구하긴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중국의 부패는 규모나 지속성 면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 매체들도 다양해지고 정보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통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 사회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사회이며 언제든지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고 썼다. 언론과 시민사회가 공직자들의 비리를 자유롭게 고발하는 풍토가 전제되지 않는 한 사각지대에서 부패를 저지르는 특권층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반부패 전쟁에서 중국 언론이 선제적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