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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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오바마에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1. 9.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는 괴이한 사건이다. 2005년 아프리카 말라위의 대통령이 유령 때문에 대통령궁에서 피신했다는 해외토픽성 뉴스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빗대면 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네팔, 스리랑카, 그리고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이번의 한국처럼 요승 또는 미신적 종교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한 유사 사례가 있었다면서 박 대통령 뉴스를 소개했다.

 

이 문제를 가십거리로 논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여섯번이나 정상회담을 했을 정도로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중요한 파트너였다. 대미 외교를 담당하는 한국 외교관들은 박 대통령과 오바마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좋은 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해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임기 내 마지막 국빈만찬이 열린 10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에게 건배를 제안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하지만 국내적 위기에 직면한 박 대통령에 대한 오바마의 태도는 냉정해 보인다.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기 바라느냐, 거리를 두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대통령 자리에 누가 있더라도 한·미동맹은 강고하다”는 논평을 냈다. 타국 내정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정부가 표방하는 원칙이기는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섭섭하게 느껴졌을 반응이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 논평에 사드 배치처럼 동맹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 예정대로 추진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군당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주한미군사령관은 8~10개월 이내에 사드 포대를 한국에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도 “가능한 한 빨리 사드를 배치하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를 접한 한국 시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깝다. 최순실씨가 F-35 전투기 같은 무기 도입 사업에까지 손을 댔다는 의혹이 나온 상황에서 사드 배치 결정도 당연히 검증의 대상이다. 내막을 모를 리 없는 미군과 국방부 관계자들의 발언은 혹여 사드 배치가 무산될까 하는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막아내는 데 꼭 필요하다는 한국 국방부와 미국 군산복합체의 설명에 납득하지 않는 한국 시민들이 아직 많다. 사드 배치 예정지인 김천에서는 80일 가까이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오바마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민 동의도 없이 인간 존중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미국에서는 외딴곳에 설치돼 있는 사드의 전자파를 대한민국 국민들은 바로 앞에서 맞고 살아야 하느냐.”

 

오바마는 사드 배치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과 방산업체들이 사드 배치에 적극적이었으며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한국 국방부와 박 대통령이 구애하다시피 요청해 오바마가 수용한 모양새처럼 돼 있다. 미국 내에서 큰 논란이 되거나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리지 않으면 동맹국 정권의 요구는 대부분 들어주고 챙길 것을 챙기는 것이 그의 접근 방식이기도 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에 많은 촛불을 켜게 만든 사건들 중에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미선·효순이 사건, 광우병 쇠고기 수입 조치에 대한 반발 등이 있었다. 미선·효순이 사건 때 주한 미대사관에 근무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자신의 책 <민주화하는 한국에서의 반미주의>에서 “북한도 아닌 남한에서 그 같은 강렬한 반미시위를 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미국은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당히 노력해왔고, 실제로 오바마 임기 동안 미국에 대한 한국민들의 호감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서두를 경우 박근혜 정권을 향하는 한국 시민들의 비난 여론은 자칫 미국을 향할 수도 있다. 미국은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대신에 두 나라 차기 정부가 안보전문가들과 신중하게 협의해 추진하도록 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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