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진정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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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오바마의 진정한 유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 18.

버락 오바마의 시대가 지나갔다. 제44대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오는 20일 백악관을 떠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간다. 워싱턴의 길도 잘 모르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오바마는 ‘담대한 희망’이란 메시지와 페르소나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백인 주류에 전혀 주눅들지 않는 40대 흑인 정치신인의 생명력 넘치는 연설은 미국인들을 매료시켰다. 오바마는 미국의 통합, 평등 그리고 정의의 상징이 됐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 승리 후 이렇게 약속했다.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게 하고, 아이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번영을 회복하고 평화의 대의를 증진하고, 아메리칸드림을 다시 요구하고, 우리는 하나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재확인할 때다.”

 

8년이 지난 미국의 현실을 보자. 금융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오바마는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았고, 파산 직전의 자동차산업 등 미국 제조업도 살려냈다. 2009년 1월 7.8%였던 실업률은 2016년 12월 4.7%로 떨어졌다. 소비자신뢰지수는 같은 기간 37.4에서 113.7로 급증했다. 마이너스 2.8%였던 경제성장률은 3.5%로 올라갔다. 건강보험 개혁으로 보험 미가입자는 4900만명에서 2980만명으로 줄었다. 14만명이 넘던 이라크 파병 규모를 5200명으로 줄였다. 경제는 좋아졌고 평화는 늘어났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왜 정권교체를 선택했을까. 왜 민주당을 버렸을까.

 

지난해 미국프로야구(MLB) 월드시리즈에서 108년 만에 우승의 한(恨)을 푼 시카고 컵스 선수단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을 방문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컵스 구단이 선물한 숫자 '44'(제44대 대통령임을 의미)가 박힌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갤럽은 지난 9일 오바마 정부 8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미국인들은 오바마 집권 동안 19개 정책 분야 중 14개가 후퇴했다고 답했다. 경제가 개선됐다는 답변은 42%로 퇴보했다는 응답 36%보다 조금 많았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늘었다는 답변은 48%로 개선됐다는 응답 14%의 3배를 넘었다. 인종갈등은 심해졌다는 답변이 52%로 완화됐다는 응답 25%의 두 배를 넘었다. 세계 속 미국의 위상도 퇴보했다는 평가가 높아졌다는 평가보다 19%포인트나 많았다. 실제 통계를 봐도 오바마 정부에서 실업률이 줄어든 것은 구직포기자가 늘면서 경제활동참가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진 데 기인한 면이 적지 않고, 소득불평등 지니계수는 역대 최고인 0.48로 올라갔다.

 

오바마의 약속은 미완이다. 그가 말한 희망과 변화는 미국인들의 삶에 녹아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을 오바마의 실패와 연결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 광풍에서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결국 반동주의의 파도가 유럽을 지나 미국까지 밀려오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디언의 개리 영은 “투표장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오바마 동맹’인 흑인, 젊은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희망이 충족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런던리뷰오브북스의 편집자 애덤 샤츠는 뉴욕타임스에서 “오바마의 계몽주의적 세계주의는 점점 더 아나키즘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어렵게 제도화한 성과마저 트럼프에 의해 초토화될 처지다. 자신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기반은 미약하다. 집권 초기 2년을 제외하면 줄곧 공화당의 발목잡기에 시달리느라 협치의 전통을 만들지도 못했다. 유산을 지켜줘야 할 민주당은 역대 가장 무기력해졌다. 오바마 집권 기간 민주당의 하원 의석은 62석, 상원은 10석이 줄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도 10명 줄었다.

 

오바마는 그래도 낙관적이다. 그는 지난 14일 퇴임연설에서 자신이 물러나는 정치의 무대 위로 민주주의의 수호자 ‘시민’을 불러올렸다. 그는 특히 “이타적이고 창조적이고 애국적인 젊은이들, 공정하고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국을 믿는 그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당파주의와 인종주의에 물들지 않은 정의로운 젊은 세대가 미국의 퇴행을 막고 진보의 이상을 지켜줄 것이란 희망이다. 오바마의 진정한 유산은 어쩌면 희망 그 자체일지 모르겠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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