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히로시마 간다면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에도 묵념을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기자메모, 기자칼럼

오바마, 히로시마 간다면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에도 묵념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4. 19.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히로시마를 방문할지 고민하고 있다. 전임자 10명 중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그가 하려는 이유는 많다. 그는 무엇보다 훗날 ‘핵무기 없는 세상’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취임 첫 해 노벨평화상을 안겨준 이 비전을, 임기 마지막 해에 최초로 핵폭탄이 투하된 도시를 방문해 재천명하는 것은 여러 모로 그림이 좋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제안한 것에 화답하게 돼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과의 관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전략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더 많다. 우선 보수층의 반발이다. 오바마는 취임 직후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제안했고, 쿠바 레짐체인지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히로시마까지 찾는다면 ‘미국의 과오를 또 사과한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보수층의 공격에 시달릴 것이다. 원폭 투하로 미군 사망자를 줄였다고 믿는 참전군인·전쟁포로 단체들도 반발한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아베 정권 시기에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구실을 준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_경향DB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감과 원폭 투하가 곧 해방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강한 한국에서는 부정적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핵무기가 다시 쓰일 일이 없기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그의 방문은 반대할 명분이 적고 오히려 지지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아시아의 이웃 나라 사람들을 강제동원하고 학대한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범죄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트루먼의 원폭 투하 역시 민간인을 희생시킨 ‘반인도적 범죄’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반대하기보다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앞에도 잠깐 들러 묵념하도록 권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 사망자 및 생존자는 전체 피해자의 10%인 7만명이 넘는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