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드의 커밍아웃 혹은 배반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올랑드의 커밍아웃 혹은 배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 28.

대통령 사생활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2주간의 소동은 지난 토요일 프랑수아 올랑드가 개인 자격으로 발표한 발레리 트리발리에르와의 관계의 공식 단절(결별 선언)로 일단락되었다. 


올랑드의 새 연인에 대한 보도가 나간 후, 프랑스인 과반 이상(54%)이 향후 대통령의 동반자에 대한 그 어떤 공식적인 지위나 예산도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더 이상 유사한 사건이 일으킬 어떤 종류의 피곤함도 사양하겠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 어떤 법 조항에도 없었으나, 슬그머니 관례로 자리잡아 왔던 대통령의 동반자를 위한 적잖은 예산과 인력 소모가 이번 소동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그나마 이번 스캔들이 건져낸 수확인 셈이다. 


졸지에 프랑스의 전(前) 퍼스트레이디가 된 발레리 트리발리에르는 1년 전부터 약속되어 있던 인도 뭄바이에서의 결식아동을 돕는 자선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2주간의 침묵을 깬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라!” 밝은 얼굴로 건재를 과시하는 그녀를 더 이상 걱정하는 무례는 삼가야 할 듯하다.


사회당은 물론 대중민주연합에서도 다시 본격적으로 민생 문제에 정치권이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며, 이 신속한 결말을 반기는 분위기다. ‘바람도 피우는 보통 남자 올랑드’에서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정상 궤도 복귀에 성공한 올랑드. 그러나 그를 맞이한 건 실업 증가를 막지 못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따끔한 질책이다.


2012년 5월 올랑드 취임 이후,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려오던 실업률 그래프가 다소 완만해지면서 2013년 12월에는 마침내 실업률 그래프가 하향선을 그리게 될 것을 정부는 은근히 기대해 왔다. 


그런데 지난 12월에도 실업률은 여전히 0.3% 증가한 것으로 결국 확인되면서 ‘실패’라는 단어가 올랑드 대통령의 어깨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양궁 체험을 하고 있다.(출처: ap연합)


프랑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단 한가지 문제를 꼽으라면, 그것은 ‘실업’이다. 정부의 모든 노력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올랑드 또한, 1년 전, 실업률 상승곡선을 반드시 하향곡선으로 바꿔놓을 것을 약속한 바 있다. 


61%에서 시작된 그의 지지율이 1년반 만에 22%로 떨어지는 동안 프랑스 실업자 수는 290만명에서 330만명으로 늘어났다. 10%의 증가율을 보이던 2012년의 실업률 상승이 2013년에는 5.7%로 다소 완만해졌다는 사실만을 그나마 정부는 위안으로 삼지만, 불행하게도 프랑스 통계청은 올 상반기에도 지속적인 실업률 증가를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실업대책이다. 그들은 온전히 기업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기업의 ‘고용비용 경감’을 실업이라는 전쟁에 나서는 무기로 삼고 있다. 이미 실패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강력한 기업 감세 조치로 고용비용의 획기적( !)인 경감을 올랑드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약속하면서, 이것이 올랑드의 명백한 배반인가, 아니면 본격적인 커밍아웃인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1936년 인민전선 정부로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조금 덜 일하고, 더 많이 버는 사회적 목표는 줄기차게 실현되어 왔다. 그런데 불과 20여년 전부터, 프랑스는 더 많이 일하고, 덜 벌며,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 최악의 사이클에 접어들었다.


‘고용의 적은 금융’이며, ‘20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이토록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는 노동계의 지적을 외면하는 한, 엉뚱한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서는 올랑드 정부의 실패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bastille@naver.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