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원회는 ‘실패’를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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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유럽위원회는 ‘실패’를 고백했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1. 22.

지난 수요일(20일), 프랑스 일간지 위마니테(l’Humanite)는 유럽위원회 수석 경제학자가 작성한 미공개 문서를 입수,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유럽연합이 유로존 국가들에 일제히 적용시킨 긴축정책이 결국 이 모든 나라들에 재앙을 가져오게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학자들이 금융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건넨 로드맵이 계산 착오에 의한 실수였음을 인정한 이후 두 번째로, 신자유주의의 성전에서 돌출해 나온 비판적 고백이다. 연초, IMF 소속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다니엘 라이는 IMF 공식 사이트에 올린 보고서를 통해 IMF가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적용한 긴축모델은 경제예측에 관한 수학공식상의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밝혀 충격을 준 바 있다.

위마니테지가 보도한 보고서의 작성자 장 벨드(Jan In’t Veld)는 유럽위원회의 경제성장 모델을 제시하는 수석 경제학자로, 유럽위원회가 유로존에 제시한 대부분의 경제 정책은 그의 작업을 기초로 완성되었다.

 

(경향DB)

그는 ‘유로존에서의 예산 안정화와 그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이 일률적으로 유로존 국가들에 적용한 긴축정책은 프랑스 국내총생산의 성장을 4.78%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독일에서는 2.61, 이탈리아에서는 4.86, 스페인은 5.39 그리고 최악의 경제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8.05%의 하락을 유발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유로존의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긴축이라는 정책을 구사하였을 때 이 여파가 상호 간에 작용하면서 그 부정적인 효과를 상승시켰다고 덧붙인다.

이에 대해 아탁(Attac: 국제금융관세연대) 프랑스의 대표인 경제학자 토마 쿠트로는 “전혀 놀랍지 않은 분석”이라고 답하였고, 시앙스포 경제연구소의 카트린 마티유도 “그 보고서는 우리가 평가한 내용과 유사하다”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연구소는 같은 기간, 프랑스 국내총생산 성장의 7.5%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감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로존 국가들이 지금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더 이상 적용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2011년부터 2년간 적용한 정책이 남긴 구멍을 메울 수 있게 되는 건, 2018년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유로존 정부들은 지금의 긴축정책 방향을 지속할 것을 천명하고 있어, 경제상황은 2018년이 되어도 호전될 전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카트린 마티유는 전한다.

장 벨트가 속한 경제위원회는 유럽위원회 가운데서도 가장 정통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룹으로 알려져 신자유주의 노선의 실패를 인정하는 최초의 보고서가 던지는 여파는 작지 않다. 이토록 심각한 비판이 제기되는 긴축정책을 지속하는 프랑스 정부와 이를 추동해온 유럽위원회에 대해 그 정책의 정당성에 심각한 문제가 대두된다고 프랑스 아탁의 경제학자는 지적한다.

이쯤 되면 신자유주의는 이 시대의 자기 파괴적 광기를 조정하는 종교며, 유럽위원회는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신성한 교리를 사수하는 자본의 바티칸이라고 부를 만하다. 몇몇 경제학자들의 고백은, 부패로 몰락해 가는 중세교회에서 일탈한 양심있는 사제들의 고발을 연상케 한다.

권력 창출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복지공약의 발 빠른 폐기, 유럽 순방 중 외국기업들에 한국공공시장 개방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온 박근혜 정부가 택하고 있는 경제노선은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다. 그와 동시에, 이미 수렁이었음이 판명된 지점으로 국가의 운명을 몰고 가는 어리석은 아집일지도 모른다. 지금 제2의 IMF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은 바로 새누리당 내부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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