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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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유학생의 점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0. 25.

최근 중국의 한 명문대의 한국인 유학생회가 학교 법무처로부터 경고문을 받았다. 유학생회에서 단체 점퍼를 맞춤제작하면서 대학명과 휘장을 넣은 것이 명백한 지적재산권 위반이라는 내용이었다. 대학 측은 해당 휘장이 상표등록이 된 무형재산이기 때문에 재학생이라 해도 임의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유학생회는 결국 제작을 취소하고 이미 받은 점퍼 비용을 환불 조치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대학들은 재학생들이 비영리 목적으로 휘장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흔히 중국을 ‘가짜의 천국’ ‘세계의 짝퉁 공장’이라고 부른다. 서방국가에서 중국을 공격하는 주요 근거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적발된 가짜·위조 상품 중 80%가 중국산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슈퍼 301조’도 중국의 지재권 보호를 문제 삼는다. 그러나 중국의 지재권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지재권은 보호받아야 할, 지켜야 할 권리라는 개념이 퍼지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의 지재권 재판 결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중국의 스포츠의류업체 챠오단(喬丹·조던의 중국명)과 4년간 상표권 소송을 벌였다. 줄곧 패소하던 조던 측은 지난해 12월 최고인민법원으로부터 챠오단 측이 조던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기업인으로 활동하던 2006년부터 중국 내 ‘트럼프(TRUMP)’라는 상표를 두고 분쟁했지만 연이어 패소했다. 그러다 10년 만인 지난 2월 ‘트럼프’라는 상표를 등록했다.

 

중국의 국민음료인 량차 브랜드 왕라오지(王老吉)와 자둬바오(加多寶)도 7년 법정 전쟁을 이어왔다. 왕라오지를 생산하는 국유기업 광저우의약그룹과 홍콩에 기반을 둔 자둬바오의 훙다오그룹 간의 분쟁은 당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여겨졌다. 상표권과 광고 분쟁에서 훙다오가 연패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캔 포장을 둘러싼 공방에서는 두 회사 모두 붉은색 캔을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훙다오그룹의 승리다.

 

중국은 2025년 지재권 강국건설을 목표로 2015년 초부터 지재권 보호 강화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추진 중인 ‘중국제조 2025(제조업 고도화)’ ‘의법치국(법에 의한 통치)’과도 직결돼 이 같은 흐름은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문출판광전총국 부국장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지재권 침해 문제에 대해 묻자 “중국 매체에 보도된 ‘검망행동’을 주의 깊게 봤는지 모르겠다”면서 당국의 보호활동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중국의 저작권침해 관리 조치인 검망행동을 설명하며 “중국은 국내외 저작권권리인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지난해 상표 출원건수는 369만1000건으로 15년 연속 세계 1위이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유효상표 총량은 1237만6000건에 이른다. 발명특허 출원건수도 전년 대비 21.5% 증가한 133만9000건으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지켰다. 발명특허 보유량은 110만3000건으로 미국과 일본에 이어 100만건을 넘겼다.

 

어마어마하게 쌓인 특허권과 상표권은 언제든 한국 기업을 겨냥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전략 무기화하고 있다. 유커의 거대한 소비력을 경제보복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보상 수단으로 쓴다. 한국과 대만 관광을 금지하고, 대신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해 필리핀 관광을 활성화하는 식이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중국법원은 삼성전자가 화웨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8000만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중국이 제대로 지적재산권을 챙기기 시작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현재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가.

 

<베이징 ㅣ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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