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관음증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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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이것은 관음증 민주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4. 19.

“파파라치 민주주의”, “야만적 사생활 공개”, “관음증 부추기기”…. 장관들의 재산을 최초로 공개한 후 쏟아져 나온 프랑스정가의 반응이다. 장관들의 재산공개는 제롬 카위작 전 예산부 장관의 해외 은닉계좌 고백 이후, 수습하기 힘들 만큼 실추된 사회당 정부의 도덕성을 만회해 보려 한 대통령의 특단 조치였다.


공개된 장관들의 재산목록을 들여다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생각보다 그들의 재산은 평범했다는 것. 그러나 과연 이게 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는 것. 그리고 정치권의 반응만큼은 아니었지만, 남의 사생활을 강제로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는 것.


국회의원 재산공개 공보보는 국회직원들 (경향DB)


왜 지금까지 공직자의 재산이 금기에 부쳐져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선 남의 사생활에 속속들이 관심 갖거나 떠벌리지 않는, 소위 입이 무거운(discret) 태도를 품위 있는 사람의 첫 덕목으로 꼽는다. 이 때문에 퍼스트레이디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들이 만들어지는 언론의 자유는 있어도, 그걸 사서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63%의 프랑스인들이 장관들의 재산공개가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80%의 프랑스인들은 이들이 부자라 해도 거기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모순된 반응은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현대차를 모는 법무부 장관 토비라가 소유한 3대의 자전거. 대부분의 장관들이 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은행빚. 2만원도 안되는 잔액을 가진 문화부 장관 필리페티의 통장 등 상세한 장관들의 재산목록 앞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미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사르코지를 비롯, 직권남용으로 재산을 불려온 정치인들의 행각은 더 이상 정치인의 재산이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4월 말 국회에 제출되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법에 대해 우파 대중민주연합의 대표는 “우리는 만장일치로 이 법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국회의장인 사회당의 클로드 바르톨론조차도 의원들을 먹잇감으로 던져놓는 이런 식의 방법보다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제도를 찾아야 한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재산공개법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카위작을 낙마시켰던 것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된 사법부를 통해서이지 이런 식의 재산 공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20년 전부터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가 법제화된 나라에서, 이 제도가 고위공직자들의 부정축재와 도덕적 해이를 막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러나 이 법마저도 없었다면, 그 어떤 걸림돌도 없이 권력이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방치해야 했을지 모른다. 줄줄이 자진사퇴한 대한민국 현 정권의 장관 후보들의 제발을 저리게 했던 것의 대부분은 그들의 놀라운 재산목록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고야 말았던 각종 편법,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재산이 100만유로(14억6000만원)를 넘는 사람이 전체 38명 중 8명으로 21%에 불과하고,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외무부 장관 로랑 파비우스(약 88억원)를 비롯한 세 명의 장관 모두 대부분의 재산을 부모로부터 상속받았다. 이만하면 그다지 부끄러운 내각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지나치게 많은 재산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며, 그 의혹은 대체로 정당하다. 카위작의 은닉 계좌를 최초 보도했던 메디아파르지는 로랑 파비우스의 해외 은닉계좌에 대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파비우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게임의 룰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직한 부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이 도덕성을 요구한다면, 부자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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