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마지막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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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이대근 칼럼]마지막 탱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2. 6.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뒤 노동신문 사설은 이렇게 썼다. “희세의 천출위인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만이 안아 오실 수 있는 특대사변, 대승리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트로피를 함께 들 사람이 있다. 오바마와 트럼프다.

 

미국은 대북 정책 실패를 통해 북핵 개발에 기여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한의 요구에 대한 미국의 대응, 미국의 요구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얽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북한은 핵무력 완성까지 미국과 함께해왔다. 완성 선언 이후의 길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라는 동반자가 있다. 김정은 홀로 가지 않는다. 이번 2인무(二人舞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완성 선언 이전보다 좀 더 민감하고 복잡하다는 사실뿐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서로 엇갈리는 두 개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선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성을 선언, 선을 넘지 않으리라는 암시를 했다. 미국에 예방공격 명분을 주지 않은 것이다. 평창 올림픽과의 시간상 거리도 적당하다. 올림픽 코앞인 1월에 발사했다면 협상으로 국면 전환할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협상도 가능하다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아직 대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없다. 그리고 미리 완성 선언을 해놓음으로써 비핵화로 되돌릴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으로 명기했을 때처럼 비핵화 꿈을 단념케 하려는 심리적 선제공격이다.

 

미국이 완성 선언을 미심쩍어하고, 그 때문에 미국의 대북 자세가 여전히 뻣뻣하다고 느끼면 북한은 핵무기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경우 재진입 기술을 개발해 태평양 상공에서 폭발 실험을 단행하는, 이른바 특대형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는 북한이 추가 도발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북한이 현재의 핵개발 수준에 만족하고 대화에 나서도록 국면 전환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트럼프의 다른 선택지는 북한이 굴복할 때까지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짐짓 그걸 과시한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 앞에 각각 두 가지 길이 있다면,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둘 모두 정면충돌하거나 둘 다 충돌을 피해 대화하는 경우, 둘 중 한쪽이 대결적 자세로 나가고 다른 쪽이 맞서지 않는 경우다.

 

최악인 정면충돌을 피하고 최선인 대화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정책 결정권자가 냉정하고 매우 이성적이어야 한다. 북한이 만일 미국의 어떤 행동에 자극받아 핵무력에 대한 신뢰를 100% 보장해 보이겠다며 기술 개발에 다시 나섰다고 치자. 그래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ICBM을 시험 발사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과 미국 모두 곤란해진다. 전쟁 상황에 직면해서도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누가 먼저 시작하든 전쟁은 북한의 종말을 가져온다.

 

트럼프에게도 딜레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탄핵당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을 상대로 예방공격을 해야 하나? 미국인을 포함한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천문학적인 군비를 쏟아부으며 전쟁의 수렁에 빠져야 하나? 한국·중국·러시아가 모두 반대하는 전쟁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 참가자가 합리적이면 최악의 게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트럼프는 서로 미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은 1.5트랙 대화에서 트럼프가 정말 미친 것인지, 그저 미친 척하는 것인지 미국 전문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미친 강아지라고 했다. 바로 이 두 사람이 지금 서툰 탱고를 추며 네 개의 문 가운데 하나를 통과하려고 한다.

 

북·미관계는 상대의 신호와 선택이 나의 신호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성에 지배된다. 두 사람은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한발 한발 내디뎌야 한다. 상대의 주파수를 잘 파악해야 한다. 좋은 신호는 좋은 반응을 유도하고, 나쁜 신호는 나쁜 반응을 부추기기 딱 좋은 순간이다. 탱고와 같은 2인무는 박자가 안 맞으면 몸이 부딪치거나 상대의 발등을 밟게 된다. 최악을 피하려는 상대의 입장을 약점이라고 여기고 더 몰아붙여 보라. 즉각 파국이다. 두 사람은 전쟁으로 가는 문을 피하고, 평화로 가는 문을 통과할까?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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