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와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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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와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8. 28.

독일 남부 뮌헨의 서북쪽에 있는 과거 나치 강제수용소인 다하우의 벽에 헌화한 뒤, 고개를 떨군 채 묵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모습은 많은 한국인의 마음을 울렸다. 메르켈 총리의 ‘다하우 메시지’에 대해 국내 총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곤 하지만 획기적인 의미가 있음은 분명하다. 메르켈 총리의 ‘다하우 메시지’와 기념연설은 독일이 앞으로도 독일의 역사, 20세기의 역사의 두렵고, 부끄러운 죄에 진정으로 마주할 것임을 국내외에 분명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나치 수용소 헌화 묵념 (AP연합)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아무래도 독일과 비교해보고 싶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며칠전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아베총리의 추도사를 보는 한, 그 메시지는 메르켈 총리와는 역방향이라고 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과거의 일본 군국주의와 식민지주의에 의한 처참한 희생을 강요당한 근린국가들에 대한 언급도 없고, 오직 자국 국민에 대해서만 호소하려는 아베 총리의 말에는 과거의 죄를 가능한 한 극소화해 장래 젊은 세대의 의식에서 지워버리려는 저의가 들여다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3일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있는 ‘정한론(한국정벌론)’ 주창자 요시다 쇼인을 기리는 ‘쇼인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하기 _ 교도연합뉴스


아베총리가 일본의 과거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희생에 대해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을 공언하고, 침략의 정의에 대해 애매한 답변을 되풀이함과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수정할 생각을 밝힌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환경정비를 진척시키고, 일본의 방위력의 보다 적극적인 장비의 확충및 운용, 자위대의 국방군으로의 격상, 헌법개정을 향한 터다지기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웃나라 한국이 일본의 변화에 민감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동향을 그저 우경화와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묶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일본이 과거 시대로 ‘격세유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제적인 환경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 국민 다수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아베 정권에 기대하지만 아베 총리의 숙원인 ‘전후레짐(체제)’ 탈피를 반드시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변화가 전후 일본의 형태를 크게 바꾸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전후레짐’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의 전후레짐은 한마디로 대외적으로는 미·일 안보, 국내적으로는 자민당의 장기정권을 가능케 한, 55년체제를 의미한다. 전후레짐은 이 두개의 시스템으로부터 성립한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의 아시아와 세계체제에서의 위치는 미국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정치적으로는 약체화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지역대국으로 부활하는 일본’이라는 비전이다. 전후 요시다(吉田) 정권이래 자민당의 보수본류는 미국의 이같은 전후일본 구상을 받아들여 전적으로 경제력에 특화해 국가적인 에너지를 집중시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야말로 55년체제가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조건이고, 일본 국민 다수가 군사적·정치적인 ‘거세’의 증거로 평화헌법을 수용함과 동시에 전수방위형 자위대의 존재와 미·일 안보동맹화를 인정해온 것도 경제성장과 그 국민적 배분구조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붕괴와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 중국·한국의 경제적 대두, 일본의 경쟁력 저하및 만성적인 디플레하의 성장둔화및 격차확대 등 전후레짐은 한계에 달하면서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이런 곤경에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가 결정타를 가하듯 일본열도를 덮쳤다. 아베 정권은 이런 일본안팎을 둘러싼 격변속에서, 흡사 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가 총력전 당시 추진했던 ‘국가개조’를 방불케 하듯 대담한 양적완화와 재정지출에 의한 경제개혁을 추진했고, 전후레짐의 헌법=체제 자체의 개혁을 단행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


이런 국내의 움직임은 대외적으로 보면 일본이 군사적·정치적인 칩거상태에서 벗어나 정치·군사적으로 보다 강한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과 표리일체가 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국가개조는 미국의 전략적인 의사를 무시하고는 실현될 수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이 지나친 ‘역사수정주의’적인 경향으로 달려가거나 한국·중국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의 변화를 묵인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대두라는 ‘파워시프트’에 군사적·정치적으로 일본을 관여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감시선 센카쿠 영해 진입 (경향DB)


확실히 중국의 동아시아 해양진출은 이 지역에서서의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위협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필리핀·베트남과의 영토분쟁과 동중국해서의 일본과의 심각한 영토분쟁 등 중국이 핵심적이익으로 간주하는 해양지역에서 중국은 함포외교에 가까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항하려 하듯 아베정권은 아세안(ASEAN)중에서 베트남·필리핀을 지원하는 동시에 집단적자위권을 시야에 넣으며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심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에 있어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보다 커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이 중국견제를 위한 동아시아적 협력의 일각을 짊어지는 것은 중국대두에 의한 파워시프트를 극복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가장 영향력이 크고,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자 지정학적으로도 가까운 중국에 대항해 한국이 일본과 대열을 짓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한국 안보가 기댈 곳인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가 험악해질 경우 한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며 한국은 극히 복잡한 대국간 지정학적인 파워게임의 한복판을 헤엄쳐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북한리스크’를 극소화시키기 위해 북한의 핵폐기와 남북공존에 미국·중국의 적극적인 간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아세안 국가중에서도 중·일 대립에 중립적인 나라들과 협력을 심화시키고, 또 영토문제를 둘러싼 중국·베트남, 중국·필리핀간 대립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아베 정권 뿐 아니라, 일본국내의 시민사회와 자치단체, 평화주의 세력과 협력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은 내부 다툼으로 나날을 보낼 여유가 없다.


<번역 | 서의동 도쿄특파원>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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