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 지도자 엘시시,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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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군부 지도자 엘시시, 대통령 취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6. 9.

-이집트에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시리아에서도 대선이 치러졌다.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한창이었던 지역에, 다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양상. 중동 북아프리카 아랍의 봄 이후 상황을 점검해본다.

지난 8일 이집트의 새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가 취임했다. 엘시시는 카이로의 헌법재판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첫 TV 연설을 하면서 화해와 관용의 기반 위에 새 시대가 세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해와 관용을 얘기하면서, 엘시시는 폭력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엘시시의 취임식 자체도 삼엄한 경계 속에 치러졌다. 국방장관 자리에 있으면서 지난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엘시시는 정치적 반대 세력인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을 해산시키고 형제단 시위대 수백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화해와 관용은 당분간 먼 미래의 얘기가 될 것 같다.

-대선에서 엘시시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뒀는데. 이집트인들은 민주주의보다는 안정을 바랐던 것으로 봐도 될까.

엘시시는 지난달 26~28일 치러진 대선에서 96.9%를 득표했다. 수치로만 놓고 보면 민주선거였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압승이다. 하지만 투표율은 매우 낮았다. 당초 투표를 이틀 동안 하기로 했다가 투표율이 너무 낮아서 하루 연장했는데도, 최종 투표율은 47.4%였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소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한 마디로 엘시시를 지지한 사람들만 투표를 한 셈이다. 국민들 절반은 지지를 유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동의 왕정 국가들은 이집트에 새 정권이 들어선 것을 환영했다는데.

지난해 7월 쿠데타로 쫓겨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은 무슬림 형제단을 조직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연합, 오만 등 걸프의 왕국들은 이 조직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슬람 정치운동 중에서도 형제단의 운동은 과거 군부독재정권이나 왕정에 반대해온 풀뿌리 민중 조직 성격이 짙다. 그래서 무르시가 쫓겨나자 걸프 국가들은 이집트 군부를 대대적으로 지원했고, 수백억 달러를 내줬다. 

이번에 집권한 엘시시는 미국 유학파로 미국과도 친하고, 걸프 왕국들로부터도 지원을 받는 셈이다. 엘시시는 우선 치안과 경제회복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했는데, 여론을 억압하고 극도로 통제하면서 걸프 자금으로 당장 서민생활의 급한 불을 끄는 식의 정치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절차가 보장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도 대선이 실시됐다고.

시리아 내전으로 15만명 넘는 사람들이 숨졌으며 23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시리아 내부를 떠도는 유민들까지 포함하면 내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숫자다. 하지만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직 투표 결과는 안 나왔지만 지난 3일 치러진 대선에서 아사드의 3연임이 확실시된다. 

시리아에서는 그동안 대선이 제대로 치러진 적이 없다. 여러 후보가 나온 대선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사드를 위한 정치적 요식행위에 그쳤다고 봐야할 듯. 국제사회는 이번 선거를 피의 선거라고 비난했지만, 아사드 대통령은 이미 내전에서 승기를 잡았고 오랜 피난 생활에 지친 난민들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리비아 상황은.

무아마르 카다피가 쫓겨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지난 3년 동안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는 새 정부가 세워졌고 인권변호사 출신의 총리가 잠시 집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전 때 무기를 손에 쥔 무장세력들은 내전이 끝난 뒤에도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특히 카다피에게 강력 저항했고 내전 승리를 견인했던 동부 지역의 무장세력들이 지금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부 중심도시 벵가지 등에서는 이들이 자치정부를 멋대로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 퇴역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이끄는 동부 세력이 반정부 투쟁을 선언하면서 내전 상태 가깝게 변해버렸다.

-리비아의 혼란에는 석유 이권 문제도 결합돼 있다는데.

동부 무장세력과 부족집단들의 요구는 명확한 듯. 동부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 이익을 트리폴리 중앙정부에 내주지 않겠다는 것. 수도 트리폴리에서조차도 정부는 치안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무장조직들이 구역을 나눠 자기들이 치안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형편이다. 무기력만 드러낸 알리 제이단 총리는 작년에 무장세력에 납치된 적도 있었다. 결국 지난달 말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이슬람주의자인 아흐메드 마티크 총리가 취임했다. 그런데 취임하자마자 지난달 27일 마티크 신임총리 집이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리비아 상황도 당분간 진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아랍의 봄은 사실상 실패한 게 아닌가.

겉모습만 보면 그렇다. ‘아랍의 봄으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금. 거리를 가득 메웠던 희망의 함성은 사라졌고 국가들은 하나 둘씩 아랍의 봄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이슬람주의 정권이 잠시 들어섰다가 군부 지도자가 복귀한 셈이 됐고 리비아에서는 혼란 속에 이슬람주의 총리가 취임했다. 시리아는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반정부 진영이 내전에서 패색이 짙고, 예멘은 장기집권 독재자가 쫓겨난 뒤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테러단체의 온상이 됐다.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도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소강상태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아랍의 봄이 맥없이 퇴행하게 된 것은 즉흥적인 봉기에서 촉발된 시위를 뒷받침해 줄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독재를 거치면서 대안적인 시민사회 세력이 형성되지 못했다. 이들 이슬람 국가에서 조직력을 갖춘 집단은 이슬람 단체와 군부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럼니스트 아미르 타헤리는 조직력을 갖춘 세력이 혼란을 틈 타 권력을 잡으면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다시 집결해 더 큰 혼란이 야기되고, 결국 군부가 구원자로 나서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전 역시 결국 알누스라전선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과 정부군의 싸움으로 변질됐다.

-역사는 기나긴 과정이며, 민주주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보여주는 듯.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직 실패라고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도 나폴레옹 체제라는 반동 국면을 겪었다.우리도 오랜 시간에 걸쳐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지금까지 밟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아랍의 봄이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기회의 창은 이제 막 열렸다고 논평했다. 한번 자유를 맛본 아랍의 시민들에게서 앞으로 계속 더 많은 요구가 터져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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