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와 ‘가난한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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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일대일로와 ‘가난한 큰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5. 24.

1967년 6월 잠비아 대통령과 만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중국의 국제적 의무를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마오 주석은 “전 세계가 (제국주의에서) 해방되지 못한다면 중국 역시 스스로 완벽한 해방을 이룰 수 없다”면서 “먼저 독립한 국가는 나중에 독립한 국가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1955년 4월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내정 불간섭 등을 앞세운 비동맹 외교로 제3세계 국가들의 마음을 열었다. 이들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기 위해서는 물질적 보상이 필요했다. 공산주의의 우월함을 과시하면서 ‘맏형’ 역할을 꿰차고 싶었던 중국은 대외 원조에 몰두했다. 1967년 중국이 대외 원조에 쓴 돈은 19억9400위안으로 국가 재정 지출의 4.5%에 달했다.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794억위안에 불과했다.

 

 

그 후 50년이 흘렀다. 중국은 미국과 맞먹을 정도의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GDP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10조3511억달러 규모에 달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세계에서 두 번째 경제 대국을 이끄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체제 이데올로기 대신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라는 더 세련된 방법으로 체면을 세우고 싶어 하는 듯싶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금전이다.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세계를 향해 내놓는 돈 보따리 크기도 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 국가회의센터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세계 각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베이징 _ AP연합뉴스

 

지난 14일 시 주석은 베이징에서 개막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통 큰 계획을 발표했다. 일대일로 건설을 위해 실크로드 기금에 추가로 1000억위안(약 16조3600억원)을 지원해 총 3000억위안(49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29개국 정상과 130개 국가의 대표단 앞에서 막대한 숫자를 내세우며 중국의 체면을 세웠다. 포럼이 끝나자 중국 정부는 포럼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과 76개 항목, 270개 항의 경제협력 사업 추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이 2013년 일대일로 계획을 발표한 후 중국은 이를 통해 국내외 영향력 넓히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국내 빈곤 문제 해결이 아직 초보 단계인 수준에서 점점 규모를 키우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문제도 해결 못하는데 대외 과시용으로 쓰는 예산이 너무 많다며 ‘가난한 대범함’ ‘빈곤한 큰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대일로 포럼을 열면서 베이징 시내 교통은 수시로 통제됐다. 그러자 ‘일로일대’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가 나왔다. 베이징 순환도로인 2환의 한쪽 차로는 통제 때문에 텅텅 비어 있고, 반대편 차로는 주차장처럼 차가 들어찬 광경을 두고 한쪽은 길이고 한쪽은 주차벨트 같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평소에도 아프리카 국가 등 각국 지도자들이 베이징에 오면 예우를 다하기 위한 통제 때문에 차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소시민들에게 일대일로는 먼 얘기다.

 

일대일로 포럼은 시진핑 주석이 주도한 세력 과시 이벤트인 동시에, 중국 공산당 정권의 국제적 지위를 보장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특히 마오쩌둥 시대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시 주석의 체면은 세워줬다.

 

지난해 3월 마오 주석 이후엔 나타나지 않던 얼굴을 새긴 배지가 등장했다. 배지에는 시진핑 주석의 얼굴이 인쇄됐다. 지난 3월에는 관영 CCTV가 시 주석의 하방(下放) 시절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초심(初心)>을 방송하며 시 주석의 과거 미화에도 나섰다. 올가을 열리는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시 주석의 통치이념을 정리한 시진핑 사상이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50년 전 마오 시대와 닮아간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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