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잃은 건 10억엔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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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잃은 건 10억엔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9.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승전국 지위를 얻지 못해 그 후속조치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관계는 이처럼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출발해 어느덧 50년이 흘렀다.

모든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난 세월의 모순을 하루아침에 바로잡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지난 28일 한·일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합의의 문제는 법적 책임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로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일본에 해준 것이 진짜 문제다.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책임은 고사하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조차 명확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말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지만 이를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무력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강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는 많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입증과 평가는 앞으로 얼마든지 명확하게 내려질 수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28일 서울 외교부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서성일 기자


이번 합의는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현재 상태에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해 이 같은 길을 원천 차단해버렸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으며 앞으로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번 합의로 보장해준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합의로서 효력이 없다.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는 인권에 관한 것이어서 어느 나라도 이에 침묵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을 결집시켜왔다. 이제 와서 “일본과 약속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겠다”고 할 것인가.

더욱 자괴감이 들게 하는 것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대가로 받은 것이 돈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공동기자회견 발표문에서 ‘상기 1항2조에서 표명한 조치를 일본이 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1항2조는 일본이 10억엔의 예산을 출연해 위안부 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연봉 정도의 돈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거론치 않겠다는 이 합의를 국제사회는 어떻게 바라볼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8일 회담을 마친 뒤 일본 기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그토록 원하던 ‘위안부 면죄부’를 단돈 10억엔에 건네준 것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역사에 영원히 굴욕 외교로 기록될 것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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