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이 그리는 일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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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이 그리는 일본의 모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 14.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일본 유권자들은 최근 중의원 선거에서 스스로를 암흑의 시대로 안내했다. 선거에서 뽑힌 의원들의 75%가 전쟁 포기를 명기한 헌법 9조 폐지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민당이 안정적 다수로 권력을 재탈환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처음으로 헌법개정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자민당이 올해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도 3분의 2 이상 다수 의석을 얻으면 헌법개정 절차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은 작년에 예전 것보다 훨씬 상세한 새로운 헌법안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헌법개정을 공공연하게 주장해온 아베 신조 신임 총리가 새 헌법안 마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헌법안을 들여다보면 아베와 자민당이 어떤 모습의 ‘일본’을 재창조해내려는지 알 수 있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기자회견 도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경향신문DB)


문제는 헌법안 전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현행 헌법 전문의 첫 문장은 ‘일본 국민은’으로 시작해 ‘이 헌법을 확정한다’로 끝난다. 따라서 이 문건의 주체는 ‘국민’이다. 메이지 헌법의 주체는 ‘짐(천황)’이었다. 자민당 헌법 초안의 전문 첫 단어는 ‘일본국’이다. 헌법안 전문은 국민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주권 원칙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현행 헌법은 보장받아야 할 인권의 긴 목록을 담고 있다. 인권은 ‘공공복리를 위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제약될 수 있다. 자민당 헌법안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경우에도 인권이 제약될 수 있다고 추가하고 있다. 메이지 헌법에도 똑같은 인권 제약 조항이 있었다. ‘복리’와 ‘질서’는 다른 개념이다. 가령 일본의 1960년대 안보조약 반대투쟁은 공공복리를 주장했기에 현행 헌법하에서 허용되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공공질서를 해쳤다. 따라서 자민당 헌법안을 따르자면 그런 운동은 금지될 것이다.


현행 헌법의 99조는 ‘천황’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들은 “이 헌법을 (국가의 최고 법으로) 존중하고 준수할 의무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자민당 초안에는 여기서 ‘천황’이 빠져 있다. 이 역시 메이지 헌법의 철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메이지 헌법은 ‘천황’이 선포한 법이었으므로 자신이 그 법에 구속될 필요가 없었다.


자민당 안은 일장기를 공식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확정하고 있다. 또한 A급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정부 관리들이 참배하는 것을 합법화하고 있다. 헌법 9조에 대해 자민당 안은 일본이 ‘평화주의’ 국가로 남아있겠다고 하면서도 일본국은 자위권을 가지며 총리를 통수권자로 하는 국방군을 창설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국방군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첫째, 나라를 보호한다. 둘째, 국민을 보호한다. 셋째, ‘국제사회’의 평화를 보호한다. 일본 정치의 애매한 화법에서 ‘국제사회’는 주로 미국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헌법안이 통과되면 일본 군대가 미국을 따라 중동과 여타 지역의 다양한 전쟁에 개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헌법안 9조3항에는 “국가는 주권과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과 협력해 그 영토·영해·영공을 보호하고 그 자원에 대한 통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흥미롭다. 우선 이 조항은 ‘국가’를 행위 주체로 보고 있고 국민은 정치적 조력자 정도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독도/다케시마와 센카쿠/댜오위다오와 같은 곳들에 대한 영토 주장을 하는 데 더욱 공세적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 외에도 바뀌는 것이 많지만 이 정도로도 자민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민당은 국제관계에서 일본의 입장을 바꾸려 할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들을 메이지 헌법하에서의 위치로 되돌리려고 한다. 메이지 헌법하에서 일본 국민들은 ‘신성한’ 정부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위로부터의 명령에 순응해 국익을 자신들의 이익보다 우선했다. 일본 유권자들이 참의원 선거에서도 개헌 세력을 3분의 2 이상 지지하고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안을 승인한다면 자민당의 목표는 거의 달성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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