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대통령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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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전쟁과 대통령 지지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4. 12.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토마호크미사일 59발이면 충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자신의 리조트로 불러놓고 지중해 함대에서 시리아로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이미 50만명이 넘게 희생됐지만 개입을 거부해온 트럼프였다. 이슬람국가(IS)를 척결하려면 시리아 정부와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화학무기 공격 후 63시간 만에 트럼프의 정책은 180도 달라졌다.

 

대외 정책의 급변이나 전쟁은 국제 정세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도 북한 변수는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결심은 실제 전쟁으로 이어진다.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은 다양한 정치적 효과를 내고 있다. 대외적으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을 향한 시위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집권 초반 지지율 추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 시리아 공습으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이 해킹으로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의혹은 뒷전으로 밀렸다. 토마호크미사일이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앗아갔다. 반이슬람 행정명령 무산, 오바마케어 폐지 실패 등 헛발질도 잊혀졌다. 공습 직후 여론은 긍정적이다. CBS가 10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공습 지지는 57%로 반대 36%보다 많았다. 트럼프에게 ‘까칠하던’ 존 매케인 등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의 결단을 칭찬한다. 국정 발목잡기의 대표 선수였던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이번만은 반대할 수 없었다. 트럼프가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던 CNN마저 “트럼프가 처음으로 대통령다웠다”고 평가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왼쪽에서 두번째, 세번째)가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의 외손주 아라벨라(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조지프(세번째)가 중국 민요와 당시를 암송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팜비치 _ 신화연합뉴스

 

이번 공습이 역대 최저로 추락한 트럼프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전쟁을 통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은 ‘안보결집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깃발 주변으로 흩어진 병사들을 다시 모은다는 의미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불리던 노래 가사의 일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를 지낸 윌리엄 사파이어의 정치학 용어사전에 따르면 미국의 7대 대통령을 지낸 앤드루 잭슨이 남북전쟁 당시 했던 말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트럼프가 집무실에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존경한다는 잭슨이 위기의 트럼프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준 셈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전쟁은 애국심을 자극하고,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함으로써 결집효과를 내왔다. 물론 전쟁이 모두 대통령들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갤럽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들 부시(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은 갤럽 역사상 최대폭인 35%포인트 급등, 86%를 기록했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정보까지 조작하며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도 지지율은 13%포인트 올랐다.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의 지지율도 걸프전 직후 미국 역대 최고인 89%를 기록했다. 빌 클린턴은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1998년 아프가니스탄, 수단의 알카에다 조직과 이라크를 잇따라 폭격했지만 미국인의 관심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1983년 그레나다 침공도 지지율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트럼프가 이번 공습으로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이득을 취할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공습이 일회성으로 그칠지, 중동정책의 큰 그림이 마련될지, 야당의 초당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지 등등 변수가 많다. 아사드 정권 응징은 통쾌해 보였지만 시리아 내전의 늪에 빠져 헤맨다면 지지율은 더 추락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의 말처럼 시리아는 러시아, 아사드 정권, 이슬람국가(IS),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모여 있는 ‘말벌 둥지’일 수 있다. 버락 오바마가 건드리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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