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민주주의 벗어던지는 일본,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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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민주주의 벗어던지는 일본, 어디로 가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9. 19.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독도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긴장으로 치닫고 있고,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로 중국과 일본 간 대립도 점차 격화되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공동체구상조차 부상하고 있는데도, 동북아시아 지역은 마치 영토 내셔널리즘 시대로 역행한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은 러시아와의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도 끌어안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문제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지배의 전후처리를 둘러싼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은 명백하다. 얄타회담으로부터 도쿄재판,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이르는 전후처리 과정은 동시에 전후 냉전체제의 고착화와 병행해 진행됐고 여기엔 미국의 대아시아 냉전전략이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일, 중·일 간 영토분쟁의 숨은 당사자는 미국이다. 


중국인들이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역사적으로 보면 구 소련의 대일전쟁 참가와 만주·한반도 북부에 대한 극동소비에트군의 침공, 중국 내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 및 ‘붉은 중국’의 탄생, 그에 연동해 이뤄진 북한에 의한 남침과 내전, 남북의 분단 고착화 등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이 공산세력의 위협에 노출됨에 따라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은 ‘징벌적인’ 대일정책에서 경제부흥지원으로 크게 변화했다. 미국의 ‘관대한’ 대일 지원정책은 유럽의 전후부흥을 위한 마셜플랜처럼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남북한의 내전이 일본에 공전의 특수를 안겨주었고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마셜플랜’이 돼버린 것이다. 


이렇듯 일본은 미국의 핵 및 안보조약의 바탕 위에서 군사·정치적으로는 거세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지역대국으로 소생했다. 전후일본의 역사는 요약하면 이처럼 일본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큰 틀 안에서, 통절한 ‘전쟁체험’과 그 국민적 기억을 기반으로 자민당 보수정권의 헤게모니하에서, 평화헌법을 원칙으로 삼아 경제성장에 매진해온 역사다. 


그것은 국민주권과 평화주의, 자유와 인권의 측면에서 보자면 전후 민주주의의 정착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짧은 기간의 예외를 제외하곤 자민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을 중심으로 정권이 운영돼온, 사실상 일당지배에 의한 정당정치 시대이기도 했다. 국가의 하부구조라는 면에서 본다면 관료제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기구가 집권정당과 유착하면서 경제시스템을 운영하는 개발주의적 국가체제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구도하에서 일본경제 시스템은 포디즘적인 생산체제를 통해 발군의 경쟁력을 발휘하고,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라는 부동의 지위를 획득하게 됐다. 노동진영에서 보자면 그 역사는 경제대국의 메가스트럭처(초거대건물) 속에 기업노동조합의 형태로 편입된 종속적인 네오코포라티즘의 시대였다. 정부·자본(재계)·노동의 3자로 이뤄진 네오코포라티즘은 어디까지나 노동 측에 불리해 세력을 2분의 1 또는 3분의 1로 약화시킨 협조체제였다. 


정부나 자본에 대한 노동 측의 약체성은 동시에 시민사회의 상대적인 약함과 관련돼 있었다. 확실히 전후 일찌감치 시민과 시민운동이 목소리를 냈고, 안보투쟁과 베트남 반전투쟁, 지역운동과 반공해운동 등에서 시민의 활동이 꾸준히 전개됐다. 하지만 전후 일본에서 시민사회가 광범위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0년대 한신·아와지대지진의 경험에서부터였다. 시민사회라는 사적영역이 국가에 저항하는 공적영역과 연계해 가는 역사적인 체험이 빈약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란 이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의 아말감(융합체)으로부터 성립된 것이다. 


이것은 때로는 상승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때로는 내부적인 알력도 만들어내지만, 전체적으로 체제의 순조로운 존속이 보장돼왔다. 그렇지만 냉전붕괴 이후 특히 1980년대 말부터 20년간 그 아말감이 녹아내려 ‘유동화하는 근대’ 속에 놓이면서 혼미가 깊어졌다. 그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던 바로 그 무렵 일본은 미증유의 자연재해와 원전사고를 당했고, 이웃나라인 한국·중국과 영토를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내부적인 구조변용과 대외위기가 증폭되면서 일본에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위로부터의 개입과 통제가 강화되는 징후가 커지고 있다. 방위·안보정책도 소극적인 수준에서 확대지향 쪽으로 이행하면서 정치와 안전보장 면에서의 제약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요컨대 탈(脫) 전후민주주의로 향한 기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집권여당 민주당 대표선거, 제1야당 자민당의 총재선거에 등장한 면면과 ‘제3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일본유신회 등을 본다면 익찬(翼贊)적인 보수대연합의 움직임, 신보수주의(네오콘)의 대두가 현저해지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탈 전후민주주의의 움직임을 가속화시키게 되면, 식민지배와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국과의 갈등과 대립은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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