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민생을 돕는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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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민생을 돕는 외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 10.

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대한민국 5년을 이끌어갈 박근혜호가 시동을 걸었다. 52%의 기대만큼이나 48%의 우려도 크기 때문에 인수위원회의 출항 준비는 만만치 않다. 5년의 항해도를 그려가는 데 가장 큰 도전은 경제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의 삶을 돌보는 일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일자리 증대, 경제적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확대, 물가 및 집값 안정, 사교육비 절감 등 국민의 경제적 삶을 향상시키는 정책과제가 항해도에서 우선순위로 설정될 것이다. 외교정책의 지표와 과제도 민생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되어야 할 것이고 경제외교의 비중은 격상돼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은 이미 정력적으로 경제외교를 추진해왔다. 국력의 상대적 쇠퇴를 겪고 있는 미국은 “현시점에서 최선의 외교정책은 경제발전”이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말처럼 경제부흥을 위해 경제외교의 위상을 안보외교와 함께 미국 외교의 양대 축으로 격상시켰다. 중국은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이란 지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국제환경을 마련하는 외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핵심이익을 확고히 지키되 미국과 과도한 패권경쟁을 벌이지 않으면서 수출확대와 내수진작, 사회격차 시정을 추구하는 경제 우선 외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아베 정권은 헌법개정이나 국방군 설치 등 우익적 의제를 일단 접어두고 FTA 정책, 엔저(低)정책 등 정책수단을 총동원하며 경제회생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2010년대는 경제외교의 치열한 각축장이 될 것이며 한국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체계적이고 정교한 경제외교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중국 정부 특사와 얘기하는 박근혜 당선인 (경향신문DB)


박근혜 외교의 첫 단추 끼우기는 아마도 FTA 교섭이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2월 말 한·중·일 FTA와 역내포괄경제협정(RCEP)의 동시 교섭개시와 함께 한·중 FTA 협상도 본격화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경제살리기와 한·미동맹 복원이란 두마리 토끼를 일거에 잡기 위해 한·미 FTA 비준을 향한 쇠고기 협상에 나서다 촛불정국을 맞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FTA가 가져다줄 동맹효과도 모호한 데다 대기업 수출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 FTA로는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먹거리의 국민안전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협상은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려웠다. 향후 FTA 항해도는 경제영토 확대란 성장 프레임을 탈피해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진출 촉진,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세심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섭에서 상대적 이익추구를 넘어 공생과 연대의 가치를 담아 동아시아지역의 협력적 질서를 이끌어 경제에 미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여가야 한다.


민생정치에서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듯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순항을 위해서는 급격한 대외충격을 흡수할 국제안전망 확보가 긴요하다. 위기의 충격은 약자가 가장 크게 받기 때문에 대외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국제협력 외교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장시대를 열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국면을 맞아 악전고투하였다. G20 서울 정상회의는 생존의 문제로서 국제적 금융안전망을 구축할 호기였으나 정작 정부는 “대한민국 세계 중심에 서다”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국위선양 행사로 치른 경향이 있다. 박근혜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를 냉정히 평가한 후, 금융이 민생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외교부처와 경제부처의 협업, 민간과 정부의 협업에 의해 국가지(知)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 지구적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안보·통일정책도 민생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높은 파고는 박근혜호의 시련이다. 핵선군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군사비를 증강해야 한다는 논리는 민생정치와 맞지 않는다. 북을 품는 영리한 외교로 힘의 논리를 제압하고 군사력을 대체해야 한다.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민생의 국정운영을 돕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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