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역사의 전환점에서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역사의 전환점에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3. 23.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미국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끝부분이다. 번역 오류라든가 프로스트가 매우 싫어했다던 평론가들의 해석논쟁은 접어두고 가장 광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를 새겨본다. 지정학의 저주로 불리는 한반도를 살아가는 한국은 외교에 있어 운명적 결정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역사적 변곡의 시점이라고 느낄 때마다 자주 이 시가 떠오른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전쟁위기를 말했었는데 지금 대화와 화해를 말하고 있다. 황태덕장이 있었던 세찬 언덕바람의 혹한을 고스란히 받아냈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어렵게 평화의 온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감히 예상치 못했던 일이며, 트럼프의 당선만큼이나 정치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온갖 조롱을 받던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북한을 포함한 모든 관련국들의 외면을 받던 ‘베를린선언’은 불과 1년도 안된 일이다. 의심과 냉소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견지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이니셔티브는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기적처럼 다가온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기회 앞에서 우리는 다시 두 갈래 길 앞에 선 것처럼 분열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유럽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이미 가본 길’이라는 말이었다. 이면에는 가봤던 길은 실패의 길이며, 북한에 늘 속고 마는 맹목과 오판이라는 비판이 내재되어있다.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강경파는 물론이고, 상당수 대화론자들도 두 개의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결정되기 이전에는 전적 불신, 이후에도 반신반의에 머무른다.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긍정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조심성이라면 희망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현실감각이 되겠지만, 실패한 역사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섣부른 냉소와 비판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하게 만들 수 있다.

 

어찌 협상만 가본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에서 북한 핵 문제가 시작된 지 30년을 향하고 있다. 대화, 협상, 경제지원 등의 온건한 방법은 물론이고, 압박이나 제재 등의 강경한 방법까지 동원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방법이든 충분하게 추진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본 길이라고 하더라도 못 갈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걸려 넘어졌던 자리를 알기에 피해갈 수 있으니 성공의 확률은 높아진다.

 

또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못 갈 이유는 없다. 어느 길이든 완전히 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스트가 노래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결론은 길이 달라서라기보다 선택한 자의 의지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난한 협상과 검증, 그리고 폐기의 과정은 살얼음이며 유리그릇 같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확실히 다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어질 두 개의 정상회담에서 해결의 시한과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모든 과정이 완벽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백지화되어버렸지만, 이번에는 목적지점을 정할 경우 과정은 축약될 수 있다. 지뢰를 제거할 때 조심스럽게 하나씩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꺼번에 폭발시켜 제거할 때도 있는데 지금이 그런 때다. 다른 하나는 지난 수년간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을 겪은 후 혼신을 다해 붙잡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함을 거의 모든 당사국이 절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하겠다.

 

9년간 철저하게 끊어버렸던 대화의 연결고리와 막아버렸던 입구들이 운전자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도 놀라고 있을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은 아직 없으며, 한국 정부가 물꼬를 트고 나니 주변국들은 벌써 저마다의 주판알을 튕기며 숟가락을 얹으려 하고, 훼방꾼도 등장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선택을 앞에 둔 망설임이 아니라 과감한 선택의 결과로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