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국가관계로 변해가는 북·중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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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정상적 국가관계로 변해가는 북·중 관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4. 26.
최근 파리 기후변화협정 서명식을 위해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했던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동선은 독특했다. 리 외무상은 평양에서 고려항공을 이용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로 날아가 뉴욕행 에미리트항공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했다. 돌아갈 때도 같은 코스를 되짚었다.

과거 북한 관리들은 미국을 방문할 때 베이징에서 태평양을 건너는 직항로를 택했다. 이번에 리 외무상이 이처럼 복잡한 경로로 뉴욕을 오간 것은 미국이나 중국 항공기를 타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핵전쟁을 벌이겠다고 호언하는 북한 외교장관으로서 미국 국적기를 탈 수 없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중국 국적기도 굳이 타지 않으려는 그의 행보에서는 현재의 북·중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1949년 북·중 수교 당시 북한과 중국의 군 간부들은 ‘전우애’를 지닌 사이였다.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 북한과 중국은 혈맹의 우방이자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냉전 종식으로 북·중 혈맹관계는 존립 근거를 잃었다. ‘중·조(북한)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은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이 조약에 포함돼 있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북·중 지도부 간의 유대는 약해지고 혈맹의 의미는 퇴색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習近平)·김정은 시대의 북·중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덤덤하다.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해 “(북·중관계를) 정상적 국가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대표들이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해 찬성의견을 표시하고 있다._연합뉴스

중국은 북한과 외교적 경로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원한다. ‘당 대 당’의 채널을 통해 은밀히 소통하거나 북한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북한의 편의를 봐주는 일은 앞으로 점차 사라질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집단탈출해 한국으로 왔을 때 중국 외교부가 “이들은 유효한 신분증을 소지하고 합법적으로 출국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북한을 여타 국가와 똑같이 대우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고강도 대북제재안을 담은 유엔안보리 결의 2270호에 동의하고 전면적인 이행을 천명했으며 실제로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이 역시 중국이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의 관계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북·중관계가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비치는 이유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원하는 중국과 전통적 관계를 기대하는 북한의 입장이 충돌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를 목도하면서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남북 문제에서 한국을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북·중이 정상국가 관계가 된다고 해서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국과 손을 잡거나 남북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북·중 정상국가 관계론’은 북·중관계가 달라졌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북·중관계가 정상국가의 관계로 변해가고 있는데 한·미, 미·일 관계는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공개 비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핵 6자회담에서 양자 간 군사동맹에 의존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안보질서를 해체하고 집단안보체제로 바꾸자고 약속해놓고 왜 거꾸로 가느냐는 질책이었다.

중국이 최근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논의 추진’을 제안한 것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해 한반도 문제를 현재 상황에 묶어두려는 것이 진짜 의도일 수 있다. 또한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통일로 가는 단계로서의 평화체제가 아니라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현상 유지책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고 해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지거나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 문제 해법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들만의 원칙과 시각을 갖고 있음을 감안하지 않고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는 식으로 중국을 이해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단순한 인식이다. 북·중관계는 북·중관계이고, 한·중관계는 한·중관계일 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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