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외의 ‘others’… 일제 강제노동의 명료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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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외의 ‘others’… 일제 강제노동의 명료한 증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7. 12.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인정한 대가로 이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한 일본이 곧바로 말을 바꿔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발뺌하는 것은 한·일 과거사에 관한 그동안의 행태에 비춰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다른 역사 문제와 달리 세계 각국이 당사자라는 점에서 일본의 ‘뒤집기 시도’는 무모하다.

일본은 ‘forced labour’라는 용어 대신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제적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labour와 work의 차이점을 찾아내려고 어원·용례를 ‘머리칼 쪼개듯’ 파헤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조선인 징용이 일제강점기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것이어서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주장도 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중 조선인이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하시마섬(일명 군함도·위 사진)과 하시마섬을 방문하는 유람선 승객에게 제공되는 일본 나가사키시의 홍보 팸플릿(아래)._연합뉴


하지만 일본의 강제성 부인은 자가당착이다.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Koreans and others)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려와 강제로 일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나오는 ‘others’란 한국인 외에 중국인과 2차 세계대전 참전국인 미국·영국·네덜란드·캐나다·호주·노르웨이·체코의 전쟁포로 등 2만여명을 의미한다.

전쟁포로들이 일본 산업시설에서 자발적으로 또는 돈을 받고 일했을 리 없다. 또 외국인인 이들이 일제의 국민징용령 대상자일 리도 만무하다. 일본 주장대로라면 일본 대표의 입에서 왜 ‘others’라는 말이 나왔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이 강제노동을 스스로 인정했음을 이 단어 하나가 명료하게 입증하고 있다.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강제노동 문제는 국제적 사안이다. 일본이 이를 부인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우습게 보는 처사다.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는지 여부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함께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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