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 칼럼]김정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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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호연 칼럼]김정은의 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5. 9.
북한의 7차 당대회는 김정은 정권의 비타협성을 드러냈다. 조선노동당은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포했다. 노동당은 김정은의 당이 되었다. 우상화는 김일성, 김정일 수준으로 격상됐다. ‘그이(김정은)의 발걸음에 이 행성이 움직인다’라는 우주급 찬사도 등장했다. 그러나 대회 막판 터진 영국 BBC 기자 구금 사건은 김정은 당 제1비서와 당대회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물리적으로 제한한 것은 북한 체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김 제1비서가 운을 띄운 ‘휘황한 설계도’의 정체는 핵이었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유사 이래 최고의 핵강국이 되었다고 자축했다. 그는 육성으로 핵·경제 병진노선도 확인했다. 당 규약에 핵보유국이 들어가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그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치킨게임을 그만두기는커녕 판을 더 키우는 형국이다.

당대회는 당초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예측가능한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우려한 대로 불확실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북은 국제사회와 엇갈리는 궤도를 돌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문제는 2500만 북 주민의 삶이 정권 생존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김 제1비서는 내부적으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대회 이후에도 국가를 비상대책위원회 형식으로 끌고가겠다는 말이다. 북 주민은 앞으로도 맨몸의 ‘70일 전투’를 계속해야 할 판이다. 정상국가로의 회귀나 인간다운 삶은 무기 연기되었다.

북 주민 삶의 질이 다른 나라보다 열악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인권에 관한 국제 기준은 북에도 어김없이 적용돼야 한다. 그에 미달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책임이다. 김 제1비서는 “인민생활 문제가 천만가지 국사 가운데 제일국사”라던 자신의 올 신년사 발언을 명심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역주행한다면 그것은 남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한 정권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툭하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재벌과 상위 1%를 위한 온갖 특권도 북한 문제와 얽히면 묻혀버리기 일쑤다. 남북 정권은 이 같은 적대적 공존, 묵시적 연대로 이익을 교환해 왔다. 남한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릴 일만은 아니다.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_AP연합뉴스

김정은 정권에 핵은 양날의 칼이다. 생존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생존을 위협한다. 핵·경제 병진노선은 성립 불가다. 식량과 연료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북한 현실을 감안할 때 핵과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 진로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중국은 핵에 관한 한 북한을 대변하는 형제국가가 아니다. 당대회 개막일에 북한을 겨냥해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메시지로 찬물을 끼얹을 정도이다. 이는 엄포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 야망을 접지 않는 한 입안의 가시처럼 행동할 것이다. 러시아도 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김 제1비서는 당대회에서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립은 어디까지나 김 제1비서가 자초한 일이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나라가 국제사회와 갈등을 고집한다면 답은 뻔하다.

김 제1비서는 또다시 길을 잘못 들었다. 그 길로 나아가면 이번에는 정권의 생존조차 기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북 주민의 앞날이 험난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키를 돌리는 것만이 희망이다. 국제사회와 조화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정답이다.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이데올로기는 시민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뿐이다.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한다며 시민 행복을 저당잡는 것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모멘텀을 만드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몫이다. 핵 문제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남은 북이 손을 내밀 때 지체 없이 잡아야 한다. 북의 잘못된 행태를 비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남북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계 개선을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순서이다.

남북이 각자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먼저 추진할 경우 자칫 남북관계가 주변국의 이해득실에 함몰될 위험이 있다. 남북 간에는 핵 문제 말고도 풀어야 할 갈등 사안이 산적해 있다. 더구나 핵 문제와 이들 갈등 사안은 연결돼 있다. 함께 풀지 않으면 안된다. 김정은 정권의 활로는 남쪽에 있다. 여기서 길을 찾아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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