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 칼럼]트럼프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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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호연 칼럼]트럼프에게 박수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6. 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퍼즐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부분 수용하고, 종전선언을 시사했다. 불신이 팽배한 북·미관계를 고려하면 먼저 비핵화하면 보상한다는 미국의 구상은 비현실적이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이행사항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합리적이다. 종전선언은 북 체제보장의 첫번째 절차에 해당한다.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 유예 조치도 평가할 만하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지와 맞물려 생각하면 양측은 낮은 단계의 모라토리엄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로소 북·미 사이에 정상적인 토론과 협상이 가능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비핵화를 넘어 분단·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 정착 등 한반도의 미래와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통상의 국제회담은 깨져도 관련국 간의 일시적인 관계 경색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실패 시 군사긴장 고조로 이어지고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세기의 회담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진지하지 않았다. 협상 타결을 위한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 항복 요구나 다름없었다. 패전국 다루듯 하는 미국 강경파들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회담은 한 차례 취소 사태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정책 전환은 미국 사회 주류의 완고한 반북정서와의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값지다. 그들은 북한이 체제유지의 수단인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체제모순으로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본다. 심지어 빌 클린턴 같은 대화파도 처음에는 북한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었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을 의회가 반대하자 “경수로 완성 시점에 북한 정권은 사라질 테니 걱정 말고 투자하자”고 설득할 정도였다.

 

현재까지 트럼프의 노력은 성공적이다. 대북 강경파 존 볼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그 증표다. 중대한 외교이벤트가 진행 중인데, 이를 총괄해야 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침묵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입을 막은 것이다. 그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가 김영철을 면담하는 자리에도 배석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자신들을 대화 상대로 존중한다고 믿을 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둘러싼 문제제기들은 상식선을 넘은 게 많았다.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은폐할 것이라는 발상부터 우습다. 핵은 보유 사실을 공개해야 효과를 발휘하는 정치무기, 외교무기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유국임을 시사한다. 김정은이 직접 나선 회담을 국제사기극으로 몰고 가는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북한이 신격화하는 지도자의 권위를 훼손하면서까지 외교사기를 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북한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외무성 관리들이 맡았던 기왕의 회담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절대 권력자가 나선 만큼 반드시 개최돼야 하고, 실패해서도 안되는 회담이다. 체제의 생존은 물론 회담 종사자들의 안위까지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방향 전환이 과연 북한의 이런 속사정까지 파악한 뒤에 나온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의 결단이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중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금물이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이후 미 주류세력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언론과 보수세력의 공격 목표는 북한에서 트럼프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북한에서 양보를 얻어내기도 전에 북한의 선전전에 승리를 안겼다”(뉴욕타임스)는 식이다.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양보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대북 제재의 끈을 늦추고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제스처를 보였다는 비난이다. 그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한 것은 뭐라고 봐야 하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트럼프 공격에 가세했다. 한국 보수가 미국은 무오류의 국가, 미국 대통령은 무비판 대상이라는 금기까지 깨는 것을 보니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트럼프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두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2000년 클린턴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그리고 4일 트럼프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클린턴과 조명록은 북·미 수교를 담은 공동코뮈니케를 도출했지만 이후 북·미관계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집요한 방해로 공전하다 뒤이어 등장한 조지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책으로 파국을 맞았다. 이번 회담은 그때와 다르고, 또 달라져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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