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회복의 날? 굴욕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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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회복의 날? 굴욕의 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5. 14.

민족이나 국민을 구성하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이론이 존재한다. 대개는 공통된 언어, 종교, 문화, 인종 등이 제시된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국민’이 다른 경우가 있지 않은가. 또 같은 가톨릭,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신자지만 ‘국민’이 다른 경우도 있고, 한 나라에 이 모든 종교신자들이 같은 ‘국민’으로 있는 경우도 있다. 문화와 인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정말로 중요한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이란 아마도 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국민’이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국민으로 여기게끔 하는 것 중 하나는 공통된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공통된 역사가 공유되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어떤 중대한 역사적 날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지 보는 것이다. 내가 도쿄의 한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이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부르는, 그래서 회고하고 추모하는 이날을 한국에서는 해방일 또는 광복절로 부르며 축하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받는 모습을 보았다.


지난달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군 참전국들과 평화조약에 서명하고 독립을 회복한 1952년 4월28일을 두고 비슷한 종류의 역사 이해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올해 아베 내각은 그날을 ‘일본 주권회복의 날’로 부르며 축하행사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평화조약에는 오키나와에 대한 주권을 미군정에 넘긴다는 조항도 들어 있었다. 미군정은 그 후로도 20년간 계속됐다. 그래서 4월28일을 기념하는 오키나와인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4월28일은 ‘굴욕의 날’로 불린다.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 '굴욕의 날' 집회 (경향DB)


아베는 국회의원들과 현(縣) 지사들을 축하행사에 초청했다. 오키나와현의 지사는 참석하기를 거부했다. 오키나와에서는 (보수성향) 나하 시장이 조직한 항의집회가 있었다. 집회는 기노완시의 원형극장에서 열렸는데,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좌석이 다 차서 입구가 닫혔다. 주최 측에 따르면 1만명 정도가 참석했다. 아베 정부가 조직한 주권회복의 날 행사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이다. 강조하건대 연설자들은 ‘진보진영’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보수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연설자가 “아베 신조와 그의 당은 오키나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안됐지만,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믿음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달리 행동할 것이라는 희망에 집착하는 태도이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주권회복의 날 기념식이 오키나와에는 모욕임을 잘 이해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들이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다. 심지어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오키나와를 모욕하고 오키나와인들의 호소와 항의가 소용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축하행사를 강행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는 점과 비슷한 이치다. 사람들은 종종 “그들(본토인)은 이 기지들이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 이 기지들 중 하나를 일본 본토로 옮기자고 제안하면 본토인들은 즉각 항의집회를 열 것이다. 때로 그들은 본심을 노출하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뭐라고요, 미군기지를 본토로 옮긴다고요? 왜요, 그러면 이곳도 오키나와처럼 된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미군기지가 얼마나 큰 부담인지 설명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도 미군기지가 부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2년 본토의 이익을 위해 오키나와를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베 내각은 4월28일 축하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오키나와인들의 감정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래서 1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키나와에서 ‘굴욕의 날’이라 부르는 날에 항의집회를 위해 모였다. 이런 식으로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의 간극은 커져간다.


(경향DB)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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