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 대한 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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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죽은 자에 대한 연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14.

중국 언론인 출신 샹장위는 자신의 저서 <시진핑과 조력자들>에서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2005년 1월17일 사망하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가족이 장례식에 화환을 보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이 자오쯔양을 존경한다는 일종의 암시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자오쯔양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뜬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1913~2002) 전 부총리는 톈안먼(天安門) 강경진압을 비판했다. 시중쉰은 자오쯔양,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총서기와 중국에서 개명파(開明派)로 불릴 정도로 개혁적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친의 이 같은 전력 때문에 시 주석 집권 후 자오쯔양이나 후야오방의 탄생일, 기일이 되면 두 사람의 복권 여부에 관심이 쏠려 왔다. 오는 17일은 자오쯔양이 사망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유골은 올해도 베이징시 푸창(富强) 골목에 있는 생전의 자택을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자오쯔양은 1989년 6월 보수파들이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 뒤 실각해 2005년 1월17일 숨질 때까지 줄곧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채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런 그가 죽어서도 가택연금에 처해진 채 10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려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오쯔양은 1989년 5월19일 새벽 톈안먼 광장에 섰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검열을 우회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그의 톈안먼 연설을 볼 수 있다. 그가 빨간색 메가폰을 잡고 학생들과 시위 참가자들에게 행한 7분가량의 연설은 “우리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비판하건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구하면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당신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냉정하게 생각하길 간곡하게 부탁합니다”라고 설득하는 그의 연설은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행했던 연설을 4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적잖이 기억하고 있으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갈수록 잊혀지고 있다.

그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잊혀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가택연금 시절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통해 발간된 회고록에서 덩샤오핑의 심중에 있던 개혁은 정치의 현대화, 민주화가 아니라 행정개혁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덩의 정치개혁은 공산당 일당 전제하의 개혁이며 공산당의 일당전제를 약화시키는 어떤 개혁에도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적었다. 민주주의로 나가지 않으면 중국 시장경제의 비정상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 그는 덩샤오핑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런 자오쯔양은 아직도 반당(反黨), 반사회주의 동란을 방조하고 격동시킨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텐안먼 사태 당시 총서기 자오쯔양 (출처 : 경향DB)


반부패에 대한 그의 혜안은 반부패 운동이 광풍처럼 몰아치는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자오쯔양은 “정치체제가 공정하고 투명하지 않는 한 어떠한 반부패 운동도 당내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측근이었던 두다오정(杜導正) 전 중국 국가신문출판서 서장은 “자오쯔양은 중국 인민들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다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개혁을 위한 동력으로 수렴시키려 했던 자오쯔양은 과연 명예회복과 복권을 이룰 수 있을까.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가 우세해 보인다. 그에 대한 복권이 중국에 새로운 혼란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그러나 매년 그의 기일이 될 때마다 추모객들이 신변의 위협을 걱정해야 하고 그의 유골이 10년째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중국의 수치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제는 그들이 흔히 말하는 대파대립(大破大立·크게 부수고 크게 세우다)의 의지로 자오쯔양을 가두고 있는 벽을 허물고 화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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