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맞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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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중국식 맞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2. 22.

<중국식 맞선(中國式相親)>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송 두 달도 채 안돼 뜨거운 인기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상하이 동방위성TV에서 제작한 이 프로는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서만 시청 횟수가 4억8000만건을 넘었고, 공식 웨이보 방문자 수도 2억명에 근접하고 있다. TV 맞선프로 자체가 새로운 형식도 아니고, 막강한 경쟁자 <페이청우라오(非誠勿擾)>가 8년째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구닥다리 프로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의외로 인기 비결은 구닥다리를 살려냈다는 데 있다.

 

이 프로 출연자는 부모 혹은 집안 어른과 함께 등장한다. 5명의 출연자와 가족들이 이성을 선택하는데 당사자는 선택권이 없고 가족들이 면접을 통해 배우자감을 고른다. 중국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과 배경의 가족들이 출동하니 온갖 희한한 질문이 쏟아진다. 그런데 질문의 내용들은 봉건사회로 회귀한 건가 싶을 정도로 고루하다. 남성 출연자 가족이 여성에게 던지는 단골 질문은 “집안일을 할 수 있느냐”다. 여성이 해외 유학파이든, 사회에서 어느 지위에 있든 괘념치 않는다.

 

<중국식 맞선>프로그램의 한 장면.

 

여성 출연자 가족들은 남성에게 월수입과 생활이 안정됐는지를 주로 캐묻는다.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데다 외모도 뛰어난 한 40세 여성은 어떤 가족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나이가 너무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가 나왔다. 여자는 손발이 따뜻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가족도 있었다. 딸과 함께 나온 부모들은 “딸이 연애 경험이 없고 백지같이 순수하다”고 강조한다.

 

‘번개혼(閃婚)’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중국은 결혼 초스피드 시대다. 만난 지 며칠 만에 결혼했다거나, 오전에 결혼하고 오후에 이혼했다는 믿지 못할 뉴스가 쏟아진다. 이런 중국에서 <중국식 맞선>의 예상 밖 인기는 취직을 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의 평균 결혼 연령은 26세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직장을 잡더라도,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기 전에 가정을 꾸려야 한다. 게다가 끝을 모르고 오르는 대도시 집값을 감안하면 부모 도움 없이는 결혼이 불가능하다. 상하이의 평균 결혼 비용은 20만위안(약 3300만원). 여기에 집이며 자동차 구매 비용까지 주로 남자 집안에서 부담하니 부모의 입김이 세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중국어판은 이 프로의 인기를 보도하면서 “중국식 전통사상인 남존여비는 완전히 사라진 적이 한번도 없다”고 밝혔다. 중국의 스테디셀러인 가부장제와 남존여비를 잘 버무린 <중국식 맞선>이 적시에 출시됐다는 것이다. 누리꾼들도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캥거루족 천지인 현실을 묘사한다”는 의견도 있고 “결혼은 집안의 결합이기 때문에 <중국식 맞선>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은 갖가지 현상과 문제에 중국식이라는 표현을 끌어다놓기를 좋아한다. 중국식 민주, 중국식 효율, 중국식 지혜 등 모호한 개념이 차고 넘친다. “왜 국가 차원의 반부패법을 만들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서방 기자에게 중국 고위 간부는 “서양 기자는 중국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알쏭달쏭한 대답을 하는 것도 봤다. 그러고 보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말도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못했다. 공산주의 국가로서 시장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인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역설적 표현이다.

 

<중국식 맞선>의 사회자는 조선족 동포 출신 트랜스젠더 진싱이다. 무용가로 활동하다 성전환을 한 후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독일인 남성과 결혼해 입양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전통 가치관과는 반대점에 있는 진싱이 이런 구식 맞선의 중매쟁이를 맡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도 ‘중국식’의 한 부분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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