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목표’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중국의 ‘소목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 11.

2016년 중국을 휩쓴 대표적 유행어가 바로 ‘소목표(小目標)’다. 평범한 이 단어를 단숨에 유행시킨 이는 중국 최고 재벌인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이다. 왕 회장은 지난해 8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에게 “세계적 갑부가 되겠다는 방향은 옳지만 목표가 없다”고 지적한 뒤 “먼저 1억위안(약 174억원)을 벌겠다는 작은 목표(小目標)를 세워 기한 내에 달성한 후 다음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이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은 목표부터 꾸준히 실천해 목표를 이루라는 왕 회장의 조언은 옳다. 그러나 평범한 서민들이 평생 벌기 어려운 174억원을 ‘소목표’라고 표현한 점이 공분을 샀다. 패러디도 넘쳐났다. “다이어트 할 거예요. 먼저 35㎏을 빼겠다는 소목표부터 달성해야죠”라고 말하는 과체중 남성, 인터넷 스타가 꿈이라며 “우선 10만명과 친구를 맺겠다는 작은 목표부터 실현해야죠”라고 밝히는 회사원이 인구에 회자됐다. 왕 회장이 전수해주고 싶었던 ‘부자 되는 법’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고 자조와 체념이 뒤범벅된 유행어만 남게 됐다.

 

중국은 지난해 각 분야에서 수많은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들은 넘쳐났지만 실현된 목표는 찾기 힘들다.

 

작년 양회(兩會)에서 매연 배출이 심각한 380만대의 노후 차량을 퇴출시켜 시 단위 이상의 대기오염 일수를 전년 대비 25% 줄이겠다는 스모그 대책이 발표됐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새해 초까지 연일 이어지는 극심한 스모그에 민심이 폭발했고, 결국 천지닝(陳吉寧) 환경보호부 부장이 “죄책감을 느낀다”며 “나를 비난해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칭화대학 총장을 지낸 천 부장은 환경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그도 다가가지 못한, 대기오염 25% 감소 자체가 이루기 힘든 ‘소목표’였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모호한 근거를 들이밀며 목표를 달성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집권 초기부터 강도 높게 추진한 반부패 정책이 “압도적 대세가 형성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초 “압도적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반부패의 성과를 뚜렷하게 자평한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저우융캉, 보시라이, 궈보슝 등 고위 관리의 심각한 위법 행위를 적발하고 엄정하게 다스린 점이 당과 국가에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들에 대한 사정은 개인 비리뿐 아니라 시 주석과의 권력 투쟁 과정으로 보는 시선이 더 많다. 반부패 투쟁의 성과로 자부하기엔 석연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미·중 간 무역분쟁이 터지거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이 시작된다면 중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더 복잡해진다. 중국의 지난해 12월 외환보유액은 5년10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3조달러를 가까스로 지켰다.

 

그러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제 경착륙 우려를 강하게 부인하며 관리능력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작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 기관이 내놓은 예상치보다 높은 6.7% 수준이 될 거라고 전망했고, 경제 총규모도 5조위안가량 증가해 70조위안을 돌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과잉 생산력 해소, 기업 부채, 부동산 시장 등 각 분야에 대해 모두 긍정적인 전망만 내놓았다.

 

자신감은 좋다. 그러나 중국이 실현하기 어려운 ‘소목표’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목표를 달성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고 있다고 근거 약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조와 체념 섞인 결과가 나와도 손쓰기 힘든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