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을 키우지 않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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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중국통을 키우지 않는 정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2. 24.

최근 접했던 두 명의 중국통(中國通) 이야기다. 우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거쳐 CNN 중국특파원으로 일하다 최근 퇴직한 지미 기자이다. 중국 국영 CCTV는 지난 22일 저녁, 33년 동안 중국에서 외신 기자로 일했던 그의 이야기를 20분가량 다뤘다.

올해 64세인 필리핀 국적의 지미는 20세이던 1971년 학생 교류 차원에서 중국을 방문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필리핀 학생운동의 주요 지도자였으나 공교롭게도 필리핀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체포자 리스트에 올랐고 귀국길이 막힌 것이다. 베이징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그는 1982년 타임에 입사했으며 2001년 CNN으로 옮겨 중국지사 수석 기자를 지냈다.

지미 기자는 “하나의 사진이나 한마디 말로 중국을 규정하긴 어렵다”며 “중국은 어떤 사람에게는 판다를 사랑하는 나라로, 어떤 사람에게는 독재 국가로 각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란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를 외국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기자들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가 “공식석상에서 중국 지도자들에게 정치제도 등 민감한 문제를 질문했지만 중국 당국과의 사전 조율은 없었으며 이는 자신에게 악의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시대 역사의 증인인 지미 기자는 “(지도자들이) 중국을 관리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너무 빨리 몰거나 멈추면 넘어지게 된다”고 조언했다.

로버트 로렌스 쿤 박사(71)를 본 것은 지난 11일부터 이틀 동안 중국 국무원이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에서 주최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국제포럼에서다. 그는 둘째날 포럼 서밋에서 30여개국에서 온 전문가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중국 매체들의 카메라 세례와 고위 인사들의 환영 분위기가 뜨거웠다. 쿤 회장은 “국제 사회에서 더 큰 책임을 지려는 중국을 지지하며 진짜 갈등은 정치체제의 다름에서 오는 게 아니라 국가 간 발전의 불균형 등에서 온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려는 냉전적 사고를 가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쿤 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미국의 기업인 출신이다. 1980년대 말부터 중국 관리들의 자문역을 맡았고 2005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평전을 쓰면서 유명해졌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지방정부 지도자 시절 그와 만났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중국을 연구했으며 세계에 중국을 알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쿤 박사는 지난해 출간된 <시진핑, 치국리정(治國理政)을 말하다> 출판기념회에서도 강연했다. 모두가 그에 대한 중국의 믿음과 배려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이 중국을 중국 내부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재적 접근론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서방 세계에 중국의 논리를 전파하는 인물로 중국이 각별히 관리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우리가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싫든 좋든 우리가 필연적으로 부딪치며 살아야 할 이웃 국가다. 중국이 인정하는 라오펑여우(老朋友·오랜 친구)의 존재가 국가적 자산인 시대다.

소위 '중국통'이라 불리우는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 (출처 : 경향DB)


이런 점에서 최근 이뤄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사에서 미국통에 편중된 인사가 이뤄졌다는 소식은 아쉽다. 중국통 홀대인지, 중국통 부재 탓인지 알 수는 없으나 민간에 주는 신호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중 수교가 1992년 이뤄졌으니 지미 기자나 쿤 박사가 중국을 알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중국과 외교 관계가 없었다. 중국은 워낙 복잡한 나라여서 제대로 된 중국통을 양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깊이 있는 중국통을 배출하기에 아직 시간이 모자란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국통을 발굴하고 키워주려는 국가적, 사회적 노력이 아직 치열하지 않아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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