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마라톤 열풍’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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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중국 ‘마라톤 열풍’의 그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4. 11.

중국 스포츠 애호가들 사이에서 ‘4·15 마라톤 지도’는 꿈의 지도다. 이 지도는 15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각 도시에서 열리는 43개의 마라톤 대회를 붉은색 중국 대륙에 꼼꼼히 표시해둔 것이다. 중국 육상협회에서 인정한 마라톤 대회가 15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4월15일은 마라톤 축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6만명이 참여하는 이날의 마라톤 행렬을 두고 현지 언론은 중국 설인 춘제 귀성 행렬과 비교하고 있다.

 

중국의 마라톤 열풍은 불과 몇 년 새 급속히 가열됐다. 7년 전만 해도 22개에 불과했던 마라톤 대회는 지난해 관련 대회까지 포함해 1100개로 불어났다. 대회에 참가한 인원만 500만명에 달한다. 마라톤 열풍은 중국의 경제 성장과 관련돼 있다. ‘중산층이 즐기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라톤이 중국인들의 허영심까지 자극했다. 마라톤 대회도 적지 않지만 지원자는 몇 배 더 많으니 대회 참가 자체가 잡히지 않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4·15 마라톤 지도’가 꿈의 지도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라톤 대회 참가 규정은 까다롭다. 심장병, 고혈압 같은 건강 상태뿐 아니라 완주 경험 등을 심사해 참가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완주보다 신청 통과가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꼼수까지 나왔다.

 

2016년 12월 샤먼에서 열린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가 대회 도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사망한 우모씨는 대리인을 통해 신청한 후 그의 이름이 달린 이름표를 달고 뛰었다. 유족들은 우씨의 건강 상태가 마라톤을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대회 측의 관리 부실로 사망까지 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아프리카 국가의 무명 선수들을 참가시켜 국제대회로 이미지 탈바꿈하는 주최 측 상술까지 더해지면서 마라톤 열기는 이상 과열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논평에서 미국에서 풀코스 마라톤 경기는 1100개, 하프 마라톤은 2800개(2016년 기준)로 참가 인원은 1600만명에 이르는데, 이에 비하면 중국의 마라톤 대회가 아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광란의 열풍 속에 관리 부족, 안전 위험 등 더욱 혼란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급속히 성장하면서 제도나 의식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시각장애인 가수 저우윈펑은 은행에서 민사행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카드 발급을 거부당했다. 시각 장애인을 자신의 행동을 판별할 능력이 없는 금치산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일었다. 중국 유명 검색사이트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회장은 “중국인은 자신의 개인정보에 민감하지 않다”는 말로 논란이 됐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와 온라인상 편의를 맞바꾸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그의 말은 공분을 일으켰다. 누구보다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뤄야 하는 기업의 책임자의 빈곤한 의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전 불감증, 장애인 배려와 복지 부족, 개인 정보 보호 의식 결여 같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 중국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중국은 반부패 처벌에서만큼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섭게 대처한다. 장런화 산시일보 전 사장은 뇌물 수수 등을 이유로 정청급 간부에서 과원으로 6단계 강등됐다. 사표를 마음대로 던지는 것도 기율 위반인 상황에서 망신을 견디며 일해야 하는 고난형을 받았다. 장중성 뤼량시 부시장은 10억위안 이상의 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아무리 엄중한 부패 호랑이도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2년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왔지만 장 부시장은 1심에서 사형이라는 강력한 심판을 받았다. 중국이 국가 성장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성장과 의식의 균형적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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