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할론 과대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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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중국 역할론 과대망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9. 8.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한·중은 더욱 가까워지고 북·중은 더 멀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중국과 논의키로 했다고 박 대통령이 밝힌 것도 전승절 외교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주석 간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2일 중국 반(半)관영 매체인 중국신문은 정상회담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내용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과 똑같았다. 중국 외교부가 써준 기사를 보도한 것이다. 중국 언론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중국 정부가 얼마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메시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남북 쌍방이 계속 대화를 통해 관계 개선을 이루고 화해 협력을 추진하며 최종적으로는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걸 환영한다”고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이 마치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한국과 적극 협력할 것처럼 비치고 있지만 중국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줄곧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통일을 지지해왔다. 자주적이란 의미에 대해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외세 개입 없이 남북한의 평화적 대화를 통해, 일방의 굴복 없이 통일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북한이 원하는 적화통일이나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흡수통일은 중국이 바라는 통일과 거리가 멀다. 중국의 자주통일 언급이 통일 후 한반도에서 미군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솔직히 중국이 정말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 중국 외교부의 입장은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에 반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등등. 베이징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한반도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파악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기자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중국 정부의 표현이 입력돼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을 전하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대청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_경향DB


중국의 입장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한국 내 일부 분위기를 보면서 2013년 2월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부편집인이던 덩위원(鄧聿文)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은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명 칼럼을 썼다. 중국 외교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대해석되면서 한국에서도 파장을 불렀다. 그러나 중앙당교의 한 교수는 “중국의 웬만한 한반도 전문가들을 대부분 아는데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것으로 본다”는 말이 나왔다. 덩위원은 중국 외교부의 강한 항의를 받았으며 학습시보 부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베이징에서 만나는 우리 교민들이나 중국인들은 정말 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중국에 대해 이해가 깊다며 감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 전략은 냉철하다.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국은 여전히 중시한다. 전승절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힌 것이지만 중국에도 상당한 외교적 성과다.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을 분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으로 파견하는 대사는 차관급이지만 한국에는 국장급이 간다. 북한은 중국에 밉지만 결코 쉽게 갈라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려되는 건 남북이 모두 중국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중국의 원조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이대로 가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중국 경제 의존도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크다.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대중 외교에서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옆집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좋지 않다.


오관철 |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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